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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Apr 13. 2022

경제적 자유를 이뤄도 일, 하시겠습니까?

일의 의미

한 번은 친구가 내게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된다면 뭘 하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똑같이 회사에 다닐 것이라고 답했다.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지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나날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일상에서 누군가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정말이지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밑바닥을 훤히 드러내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일도 많지는 않다. 반대로 서툴렀던 누군가가 성장하며 빛나는 모습, 오랜 고통 끝에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저마다의 삶을 가진 어른이 되고 나서 느낀 , 생각보다 사람과 뾰족하게 부딪힐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단점을 적당히 숨기고 그런대로 좋은 사람을 흉내 내는 것도 가능해졌다. 심지어 친구, 가족과도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니 관점이나 생각의 차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이가 서로의 일상에 해를 끼치지 않고 함께 하는 순간은 귀중하니 미소를 지으며 모른  넘기는 것이 오히려 미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회사에서는 다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서로의 관점 차이는 실질적인 문제 혹은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어떻게든 서로의 협의점을 찾고, 바쁜 시간을 쪼개 할 일을 정리하고 또 함께 수행해야 한다. 부딪힐 수밖에 없고 부딪혀야 옳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각자의 게으름, 비겁함, 잔인함, 또는 멍청함을 쉴 새 없이 목격하고 또 들키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위안을 느낀다. 얕게 보면 모두 좋고 훌륭한 사람들. 내 속을 제일 잘 아는 나로서는 내가 제일 못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깊게 부딪혀보니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어딘가 반드시 결함이 있고 아무리 못난 사람도 어딘가 반드시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 지난한 일상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는지에 따라 잘난 사람이 못나지기도 하고 못난 사람이 잘나지기도 한다. 영원한 친구도 없지만, 영원한 적도 없다. 생각이 맞지 않아 크게 부딪혔대도 어떤 일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될 수도 있다.


그때부터 용기가 생긴 것 같다. 결점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대신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부딪힐 용기가. 우리 모두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이지만, 노력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장한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에. 서로의 길을 달리면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가까워지기도 할 것임을 배웠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건 유한한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지혜를 넓히기 위해서라고 그랬나. 내게는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 한 권의 책 같았다. 어쩌면 그의 가족들도 알지 못할 온갖 희로애락과 사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가끔은 조연2이나 악역4(!)로 그들의 이야기에 함께 등장하고 부딪히는 일상이 꽤 즐겁다. 우리가 그리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사 한 귀퉁이에 등장하고 작게나마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때로는 신기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이런 감상적인 기분에 젖을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가깝기에 누구보다 쉽게 상처 줄 수 있는 사이, 그렇지만 그 상처를 통해 또 함께 성장하기도 하는 사이. 이 얽힘이 나는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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