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Apr 18. 2024

비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볕이 들지 않는 토요일 아침 7시, 커튼을 걷으니 끄무레한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이불에 묻혀 게슴츠레한 눈으로 가라앉은 숨을 쉬었다. 커튼 사이로 얕게 들어오는 햇빛을 기대하지만, 오늘의 하늘은 그런 나의 바람을 조금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아직 잠이 덜 깬 몸을 억지로 가누어 창을 등지고 돌아 누웠다. 밤새 충전이 완료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비 올 확률 80%'


이내 고개를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씻어야지.' 머릿속으로 세 번쯤 되뇌다 보면, 아무리 몸이 무거워도  일어날 수 있다. 베개에 짧은 호흡 몇 번 뱉고, 어깨에 힘을 줘 일어났다. 차가운 거실 바닥을 지나 화장실 문고리를 잡는다.




어느새 소파에 기대 있는 나의 오른손에는 캐모마일 티백이 담긴 따듯한 머그 컵이 들려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 아침의 여유로움. 하늘은 어느새 빗줄기로 물들었다. 가만한 얼굴로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다. 괜히 꽃 향기를 맡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기도 한다. 비 내음이 났다. 방금의 샤워 때문인 건지 몸에 온기가 감돈다. 축 가라앉았던 호흡도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고르기만 하다. 


홀짝이던 차를 선반 위에 내려놓고 소파 옆에 놓여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나쓰미 소세키의 '마음'이란 고전 소설이다. 왠지 이 책의 분위기가 우중충한 하늘색과 비슷하단 생각을 하며 첫 줄부터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단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귓가로 빗소리가 들리고, 컵에 손이 가고 만다. 책을 읽는 건지, 대충 분위기에 취해 책을 들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대충 책갈피를 꽂아 넣고 책을 소파 옆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소파에서 내려와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른편에 컵을 두고, 눈을 감았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온전한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는 생각을 비우게 하고 또 채우게 만든다. 유독 비 내리는 날을 좋아했던 어떤 한 사람이 떠올랐고, 비만 오면 짜증이 늘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문득 '나는 왜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있나' 하는 물음을 던지고 생각에 끝에 매듭을 지었다. 눈을 떠 다시 비내리는 창을 바라봤다. 여전히 촉촉하게 세상이 젖고 있다.


고개를 돌려 집 거실을 돌아 보았다. 우중충한 바깥 하늘처럼 집 안의 모든 것들이 회색빛으로 가라앉아있다. 활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차분함은 아니었다. 한 주 동안 합심하여 고생한 존재들이 잠시 고요한 낮의 기대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실의 티브이도 주방의 냉장고도 그리고 식탁도, 소파 옆 작은 독서등 까지도 조용히 쉬고 있었다.




이 또한 즐거움이다. 여유고, 행복이다. 의미있는 날이다. 


날씨가 언제나 맑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늘 밝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오늘처럼 흐린 날이 있고, 어제 처럼 맑은 날이이 존재 한다. 흐린 날이 있기에 맑고 쾌청한 날이 더 빛나고, 움츠려 지냈던 날들 있기에 행복한, 그리고 앞으로 행복할 날들이 더 빛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삶의 모든 시간, 그 속의 가치있는 순간과 무가치한 순간은 과연 누가 정하는 걸까.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건 아닐까? 날씨에 좋고 나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듯, 시시때때로 밀려드는 부정적인 일들과 생각을 띠라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려 산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삶이라는 그릇에 행복이란 음식이 꽤 많이 담긴 사람은 흐리고 울적한 날에도 처음 겪는 재미난 일을 겪을 때처럼 신비롭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어떤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늘 같은 흐린 창 밖을 바라보며 이유 없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돈 쓰기 전에 딱 한 번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