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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Dec 18. 2018

전쟁의 다른 이름, 유치원 입소

엄마 제가 갈 곳은 있겠죠?

11월 이 시기, 아주 조용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다름아닌 바로 '유치원 입소전쟁'. 가을을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이 아쉬운 시기에 전쟁에 참여 중인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걱정에 긴장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기관 입소는 실제 5~7세 대상이지만 내년 5세를 앞둔 4세 아이부터 빠른 년생, 조기 입학까지 3년 터울 주변 나이의 아이들과 부모들까지 하면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기관을 중도 변경하고 이사까지 앞둔 이들까지 모두 합하면 실제 이 전쟁에 참여 중인 수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다.


이 전쟁을 먼저 치른 선배 부모들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할 뿐 결국 어느 기관이든 들어가게 마련이라 하지만 그 여유와 따뜻한 위로가 지금 당장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수고와 무모함에 아쉬움을 남기면서도 결국 참지 못하고 뛰어드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이집이냐, 유치원이냐도 고민이지만 그 뒤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이냐 민간어린이집이냐, 사립유치원이냐 병설유치원이냐 세세한 고민도 많다. 그러나 장단점을 분석해 이동 거리와 동선을 고려해 가고 싶은 곳을 추려도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유치원이 아니다. 아이 성향에 맞춰 보내고 싶지만 병설은 당첨되기도 힘들고 사립은 대기가 많아도 너무나 많다.

이제 다시 인천으로 올라와 또 다른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아이가 새로 다닐 기관을 알아봐야 하는 시기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전화를 건 때가 9월 초중순이었는데 별 의미 없던 전화 한 통이 아이 인생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 전화 한 통으로 지금 유치원을 만났으니 말이다. 휴직으로 시간의 여유가 되니 되도록 유치원 앞에 찾아가 유치원 현장 앞에서 통화를 시도하는 유난을 떨었다. 등원 버스를 태우지 않고 직접 라이딩을 해주어야 했기에 주차여부와 픽업 동선을 보기 위함이었고 결과는 '입소'라고 말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도, 꽃길도 아니었다.


제일 처음 맘 카페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얻어 추천 내용과 거리 순 두 가지로  대강 몇 군데를 추리고 상담을 기다렸다. 병설은 하원 후 시간이 감당이 되지 않아 사립으로 결정한 것이었는데 정확히 인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사립유치원 교육비가 상당히 비싸다는 사실이었다. 또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비용, 교육, 거리, 교사 마인드, 분위기, 원장님 교육철학, 교육 프로그램 및 커리큘럼, 급식, 시설 등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아졌고 지금과 다른 경험치를 우선하겠다는 처음 접근과 달리 내 바람과 욕심도 커져갔다.


유치원 수는 생각보다 적지 않았고 학부모의 수만큼 각자의 입장과 기호도 다양했다. 그래서 유행처럼 퍼진 '숲 체험'이 특성화된 유치원이 아무리 비싸도 보내는 이들도 있고, 숲도 하루 이틀이라며 비용과 상관없이 콧방귀도 안 뀌는 부모도 있다. 영어가 주 5회 진행되길 바라는 부모나, 커리큘럼도 상관없으니 청결도를 중점으로 보는 엄마도 있다. 나처럼 맞벌이 부부에게 유리한 곳을 찾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게 맘에 들어도 공기청정기나 CCTV 유무 때문에 원서 제출 자체도 꺼리는 부모도 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각자 호불호가 다르고 우선순위도 달라 그 다양성이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유치원 설명회를 찾아다니며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립유치원 입학전형이 다 제각각이란 사실이다. 선착순인 곳도 있고 추첨제인 데도 있다.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추첨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 설명회를 아무리 쫓아다녀도 다른 엄마가 뽑은 합격 공에 내 번호가 쓰여있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돈 싸들고 쫓아가도 갈 수 없는 것이 유치원이란 푸념도 있고 초등 입학처럼 집 근처로 일괄 배정했으면 한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상담을 받으면 받을수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속이 시원한 게 아니라 갑갑해져만 갔다. 육아의 단계, 요소요소마다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만 드는 것이 어쩌자고 가장 기초적인 것도 준비되지 않고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인지 대상을 구체화할 수 없는 원망이 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때맞춰 유치원 비리마저 터졌다. 명단이 뜨고 여론이 들끓었다.

기운이 빠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던 시기엔 어린이집 폭행이 그렇게 터지더니 이젠 유치원이었다. 이 사건은 고요히 순항 중이던 나의 유치원 찾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희망하는 유치원은 선착순이었는데 조금 일찍 서둔 탓에 바로 입학금을 보내고 입소할 수 있게  것이 비리가 터지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기회를 얻지 못한 엄마들이 민원을 넣어 추첨제로 바뀐 것이었다. 어쩐지 쉽게 일이 진행된다 싶더니 입학금을 다시 환급받고 기약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같은 유치원을 희망하는 부모들에게 똑같은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크게 불만은 없었다. 다만 추첨에 떨어질 것을 대비해 예비로 유치원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 조금 번거로웠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새로 입학 상담한 곳이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원장님의 교육철학과 열변에 마음을 홀딱 뺏겨 버린 것이었다. 물론 순간적인 변덕은 아니었고, 시설과 주변 환경, 하원 시간까지 고려된 움직임이었다. 보낼 데가 없어서 고민이 아니라 오히려 맘에 드는 곳이 여러 군데 나타난 것이 더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같은 날 설명회가 끝나고 추첨을 하러 가는 동안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당첨이 되겠구나, 그래서 결국 두 군데를 고민하게 만들고 말겠구나' 싶었다. 떨어질지도 모르겠단 두려움이 선택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입소 결정되었던 곳에 다시 합격이 되었고, 순간 이 과정을 준비한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다른 유치원을 희망하는 마음이 미안해 머릿속 복잡스러웠다. 고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어떤 결정보다도 치열한 고민이었다. 남편에게 두 원의 장단점을 비교해 설명해주는 동안에도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입학금을 바로 입금해야 하는 다급한 기간도 아니었지만 딱 하루만 열심히 고민하고 결정을 마무리 지었다.


'첫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단순히 뻔뻔해지고 싶지 않은 의리는 아니었다. 첫째, 9월 어느 날 차 안에서 혼자 통화를 하며 이 지난한 일정을 시작하던 날, TO가 단 세명뿐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저희 아이 여기 꼭 보내고 싶어요!'라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간절함을 기억하기로 했다. 둘째, 유치원은 엄마가 보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아이의 성향과 맞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육아상담소 소장님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제일 처음 정보를 주고 선택에 도움을 준 글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그 글을 믿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입학이 확정되고 한 달 여가 지난 며칠 전 아이의 원복과 체육복비를 입금했다. 이제야 긴 서사를 마무리 짓는 기분이다. 유치원 선택에 대해서는 더 이상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고민하는 동안 내용을 공유했던 이들이 원하던 유치원에 됐는지 물으면 원하는 곳에 됐노라고 홀가분하게 말하려고 한다. 이번 일로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내가 갖고 싶은 것보다 포기할 수 없는 것에 치중하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을 살짝 낮추고 운을 써 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과연 이게 할 짓인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학습보다는 활동 위주의 유치원이 아이에게 적합한 곳이길, 좀 더 많은 아이가 희망하는 원에 다닐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간절히 빌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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