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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r 08. 2019

유치원 잘 다녀와 엄마가 응원할께

엄마 내일도 유치원에 가나요?

'엄마 나 유치원 좋아!'


아침까지만 해도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울먹이던 아이의 고백에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잠들기 전이면 구례에 다시 가고 싶어!라든지, 엄마는 명령만 해서 속상해!라던지 맘에 두었던 말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꺼내놓는 아었던지라 또 한 번의 진심 어린 고백은 그 울림이 꽤나 진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제주에 있는 남편과 아이의 첫날에 대해 공유하며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전해주자 (선택에 있어) 여보는 촉이 좋다는 나름의 인정의 말도 들었고,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마음 편히 목욕과 마사지도 다녀왔지만, 그간의 노력과 지난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쓴웃음이 지어졌다.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는 생각과 함께 부디 앞으로 이 곳이 아이에게 편안한 곳이길, 무탈하게 한 해를 마감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였다.


워킹맘에 피부 문제로 아이를 2년간 떨어뜨려놓고 키운 탓에 늘 어느 정도는 아이를 직접 케어해줘야 한다는 마음의 부채가 있었다. 그래서 머리와 마음이 가장 자란다고 생각되는 6세에서 7세 사이, 이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급하게 휴직을 했던 참이었다. 12월 중순부터 기관에 보내지 않고 두 달 반여를 먹이고 씻기고 돌아다니며 즐거웠지만 그동안 아이를 매일 보는 행복감과 부채 청산의 감정도 잠시, 그 사이 난 온 정신과 몸이 피폐해졌다.

이유야 뻔했다. 해야 할 일을 조금 충실히 수행한 탓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또래보다 키도 큰 편이고, 말라 보이는 외관과 다르게 무게도 꽤 나가는 편이지만 아이는 오랫동안 입이 짧았었다. 식습관 개선으로 아무거나 잘 먹는 지금에도 입맛이 도는 타이밍도 날마다 다르고, 뭘 해줘야 제일 잘 먹는지 알았기에 되도록 첫끼는 집에서 해결했다. 든든히 먹여 배를 그득 채우고 나서면 이후 일정이 훨씬 수월한 건 당연지사였다. 허나 단순히 보면 한끼일 뿐이지만 그 한끼를 만들기위한 수고로움을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훌쩍 커버린 아이가 목욕 후 개운한 몸으로 방방 뛰거나 로션을 바르는 동안 몸을 놀리면 손끝을 따라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게 되어 이 작은 행위조차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하루쯤 대강 씻기고 힘든데 더운 목욕시키지 말라는 조언에도 간단히 따를 수가 없었다. 아토피 아이에게 가장 기본이 청결과 보습인지라 물 받아 가볍게 씻기고 10분간 반신욕을 시켜준 후 로션을 듬북듬북 발라줘야 했다. 그래야 편한 걸 알기에 번거롭다고  건너뛸 수는,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돈이면 시간이 때워지는 키즈까페나 블럭방도 많았다. 물론 그런 곳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휴일과 휴관일을 체크하며 괜찮은 공연 없는지 서치해서 매일 아침 박물관으로, 과학관으로 차를 몰았고 간단한 쇼핑을 위해서도 이케아로 향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몰랜드에 가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처사였고 무엇보다 일하는 동안 자주 갈 수 없는 곳을 위주고 다니고 싶었다. 어린이 뮤지컬은 매달 한편씩 보여줬고, 하루 30분씩 동시 쓰기와 한자 읽기도 빼먹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함께 하지 못한 부채와 함께 나는 전업맘은 다 이러고 사는 줄 착각까지 하고 살았다. 꼭 전업맘과의 비교를 떠나서라도 나는 직장 다닐 때처럼 업무 하듯 그 스케줄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단순한 스케줄 관리뿐 아니라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춥고 더운 곳에서 자기를 지키는 법, 청결과 위생의 중요성 등 계속해서 알려주고 지도해주는 동시에 지루하긴 해도 방치되지는 않도록 시간을 채워주다 보니,  단순히 시간을 메꾸는 것뿐 아니라 몸도 머리도 신경써야하는 그 모든 순간이 미칠 듯이 버거웠다.


그럴 만도 했다.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나는 그 누구나가 아니었다. 난 애초부터 저 모든 걸 수행해 낼 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이탈리아에서도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그 좋다는 남부 여행도 포기하지 않았던가! 5주년 여행지 하와이에서도 나가기 귀찮아 책을 더 많이 보다 온 게 사실이었고 의사도 여행과 운동은 사치라 했던 걸 똑똑히 기억했다. 알고 있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인지 욕망인지 아이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나를 휘감았다.

결국 병을 얻는 건 누가봐도 자연스러웠다. 새 학기를 앞두고 남편이 있는 제주로 가 있는 보름 여 동안 그 좋은 시절 마다하고 꽃구경, 바다 구경은 온데 간데 없이  자리피고 드러누요양으로 시간만 까먹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찾아간 한의원에서 넋두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2월 초 그러니까 구정부터 아팠어요. 온몸이 쑤시고 식은땀이 나서 독감인 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도 독감이 확실하다고 했는데 아니었고요. 2주 전에는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서 방광염을 의심했는데, 어떻게 알았냐면 휴직 들어오기 전에 인수인계해주다 똑같은 증상을 겪었거든요. 계속 힘들게 하던 인후염이랑 어차피 다 같은 염증 쪽이라며 비슷한 약을 받아 복용했어요. 그렇게 5일 치 먹고 나니 눈 붓고 어쩐지 몸이 힘들어서 더 이상은 먹기 싫어 병원 다시 안 가고 이젠 정말 어쩌지.. 하다가 왔어요'


제주에서 한의원 두 군데를 찾아갔다. 좀 덜 말하고, 좀 더 말한 정도의 차이만 있고 말 못 한 증상은 더 많았지만 저 정도만으로도 한의사 선생님들은 내 상태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 곳은 영양실조가 왔다 했고,

한 곳은 출산 직후 몸상태만큼 허약해져 있다고 했다.


'아, 그리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고 두 달 넘게 데리고 있었어요.'


진료를 봐주신 두 분 모두 여자 한의사였는데 이제 제대로 알았다는 듯이 똑같이 웃으셨다.


'힘들었겠네요!'


처음 간 곳에선 일단 침만 맞고, 두 번째로 간 곳에서 심층상담 후 처방받은 체질개선 약을 먹었다. 그리고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기운을 차렸다.

 

우선 손발이 차서 급하게 찾아 쥐고 있던 핫팩이 필요치 않아서 편했고, 손끝과 발끝이 저릿저릿한 느낌도 많이 가셨다. 소화력이 되살아나며 입맛이 살아나니 이 또한 정말 살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뷔페에 가서 원 없이 실컷 먹고도 속 부대낌 없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한의원을 불신하며 도대체 찾아갈 기미가 없던 내가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을 보며 남편은 진작 가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안심했다.(그 사이 가방도 잃어버려 나를 대신해 경찰서를 다녀오던 남편은 내게 치매가 오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했단다.)


누워 기력을 회복하는 내내 건강이 단연 으뜸이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못 할 일이 없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체력을 회복해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려다 모든 걸 멈췄다. 아픈 동안 포기한 일정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황금같은 휴직기간이 날아가는 것만 같아 속이 쓰렸지만 이제는 정말 나를 돌보아야 할 때였다. 신기한 건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도 아이에 대한 원망은커녕 내 말과 행동에 젖어들며 조금씩 자라는 아이가 예뻐,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간중간 욱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윽박을 지른 것 또한 사실이다.)

3월, 이 어여쁜 아이가 변화를 앞두고 커다란 부침 없이 잘 적응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입소 두 달 전부터 미리 유치원을 찾아갔다. 처음 몇 번은 유치원 앞 전경만 보여주고 돌아오고, 그다음 한 달 전엔 아빠와 함께 찾아가 아빠가 자란 동네라고 알려주고, 유치원 입학식 전 두 번의 OT도 아이와 함께 참석해 점진적인 적응에 노력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15일 전부터는 <레옹의 유치원 일기>라는 쉽고 익숙한 내용의 책을 내 목소리로 직접 녹음해서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밤 잠들기 전 들려줬다.


아이에게 있어 이번 유치원 등원은 사실 낯설 것도 없다. 벌써 네 번째 시작이다. 하지만 처음 두 곳은 너무 어리고 자주 아파서 겨우 출석일수만 채우던 곳, 그다음 정식으로 2년간 다닌 병설유치원은 엄마 없이 다닌 곳, 그래서 엄마만 괜스레 유난을 떨고 아프기까지 했지만 이제야 완전히 아이를 손에서 놓고 아쉬운 마음 없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성장을 응원해 줄 수 있을 듯하다.


제대로 된 휴식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고, 제대로 된 처음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앞으로 10년 이상은 어쩔 수 없이 기관 생활과 시험 스트레스에 계속해서 시달리게 될 터이다. 그럴 때면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 게임도 실컷 하고 TV 시청도 원 없이 했던, 간식 먹고 뒹굴거리다 뜨신 물에 목욕하고 엄마품에서 책 읽다 잠든 이 몇 달간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 시기에 즐긴 여유와 만족감을 말이다. 그래서 그 힘든 마음이 조금은 보듬어지길, 그리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어디 아이뿐이랴, 나 또한 지치지 않고 엄마와 아이의 충만한 시간을 또 만들 수 있도록 내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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