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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Oct 05. 2019

아이의 동갑내기 세 친구

엄마 친구가 필요해요

친화력이 넘쳐 보이는 초반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새로운 인연 만들기에 큰 관심이 없는 엄마는 그 흔한 조리원 동기도 없다. 누구나 한 번은 거친다는 문화센터도 게으른 엄마덕에 아이는 다닌 적이 없었다. 그런데다 2년 간 타 지역에서 자라며 거의 어른들과만 생활한 아이는 구례에 있는 동안 근처 병설유치원을 다니긴 했지만 유치원이 5~7세 통합 반으로 운영된 데다 공교롭게도 동갑 친구마저 없어 친구라 이름 지어줄 만한 또래가 늘 부족했다.


엄마 친구들은 너무 빨리 결혼했거나 결혼이 늦은 엄마보다도 더 늦었다. 그래서 이모들의 아들, 딸들은 한창 초등학교에서 공부와 씨름 중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무럭무럭 자라나는 중이라 만날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의 사회생활보다는 주양육자와의 긴밀함이면 충분하다는 육아에 대한 엄마의 고집이 더해져 아이는 더더욱 친구가 없었다. 보통 기관을 보내는 이유로 친구와의 사회생활을 말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의지했던 육아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 부분은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어린아이가 다른 아이와 놀지 않으면 즐거움이 없다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들끼리만 놀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제멋대로 하는 것을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어린아이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 함께 놀아 주면 아이는 즐겁게, 더 나아가 유익하게 놀 수 있다. 고집이 세지거나 제멋대로 굴거나 심술궂어지거나 못된 버릇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  

-p87, 칼 비테 교육법-

엄마의 생각이야 어떻든 아이에게 친구가 필요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인천으로 돌아와 유치원을 다니면서 다행히 또래 친구에 대한 갈증은 일부 해소되었다. 유치원에 가는 걸 무척이나 즐거워했고, 5세부터 입소해 이미 일상을 나누고 우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된 집단속에 높은 친화력으로 무리 없이 잘 스며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픽업 동선을 고려해 집 근처가 아닌 거주 지역과 회사 중간 지역에 유치원을 정한 데다, 특히 유치원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라이딩을 해주고 있어 아이는 등 하원 시간마저 엄마와만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같은 동네로 함께 이동할 친구도 없고, 더욱이 학원을 돌리거나 사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을 생각으로 저녁 보육이 가능한 곳을 선택한 탓에 유치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또래 친구를 만날 기회조차 적었다. 게다가 일까지 하고 태어나길 약골로 태어난 엄마는 하원 이후나 주말을 이용해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에도 인색한 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아이에게는 조금은 독특하다 할 수 있는 인연의 또래 친구 세 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상에 젖어 하루를 채워가던 아이는 신기하게도 가끔씩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잊지 않고 그 그리움을 드러냈다.


- 옆집 출신 친구 S

신혼 초 분양을 받아 이사를 하게 된 1504호, 그 옆집에는 교사 부부가 입주를 했다. 그 부부에게는 두 살 터울의 누나와 아이와 동갑인 남자아이, 두 남매가 있었다. 경험상 어른들의 친분이 아이들의 친분으로 이어지는 것은 드문 일임을 익히 알고 있어 입주 초반은 시시콜콜 사는 얘기를 나누며 아이들의 친분보다는 어른들의 상호 위안과 저녁식사 때우는 일과로 시간을 채웠다. 서로를 탐색하고 바라는 것 없이 즐거웠던 저녁시간들을 뒤로한 채 결국엔 신랑의 이직으로 우리가 먼저 집을 정리하게 되었고, 옆집도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백령도로 들어가게 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자주 시간을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친구 S만 계속 우리 아파트에 산다며 속상해하던 아이는 S도 이사를 했다는 사실을 그저 기뻐했다. 백령도의 거리감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 왕십리 친구 W

신혼여행에서 만나 같은 해 아이를 낳고, 같은 해 각자의 새집으로 들어가는 등 인생의 변화를 비슷하게 겪은 지인이 있다. 심지어 같은 날 결혼했다는 동질감을 안고 결혼 5주년 여행도 오키나와로 다녀왔다. 물론 아이들도 함께였다. 이들 부부에게는 아이의 동갑친구와 그 동생, 이렇게 두 형제가 있다. 작년엔 두 부자가 제주 신랑 집에 일주일 머물다 갔고 이번엔 아예 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맞춰 일주일간 함께 보내며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부부가 각자 일하고 있고 거리도 가깝지 않아 일 년에 두어 번 만날 뿐인데도 두 아이는 서로를 기억했다.


- 제주 사진관 아들 B

남편의 이직으로 제주를 오가는 일이 잦은 나는 보통은 혼자 조용히 시간 맞춰 도착해 비상구 옆 좌석에 앉아 가곤했다. 휴직 중이던 어느 날 조금 이른 시간에 공항에 도착한 아이와 나는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평상시에는 찾지 않던 공항 내 어린이 놀이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 협소했지만 잠깐이라도 아이를 놀릴 수 있는 곳이라 불편함을 참고 있는데 동갑내기 두 아이는 서로 눈이 맞아 시설물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금세 친구가 되었다. 자연스레 그 아이의 엄마는 내게 말을 걸었고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땐 이미 연락처를 교환한 사이가 되었다. 언니는 남편과 운영하는 사진관에 놀러 오라며 반가운 초대의 말을 남겼고 그 주 주말 우리 식구는 다른 일정을 제쳐두고 아들의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진관으로 향했다.

     

늘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S를 처음 만난 때가 3살이었는데 두 아이는 처음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주먹이 어깨를 향했다. 힘도 없고 방향도 어긋한 펀치였지만 아이들만의 힘겨루기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 뒤로는 몸싸움을 하거나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으나 누나의 영향인지 타고난 성향인지 인지가 빠르고 유난히 말을 잘하는 친구 앞에서 아이는 버벅대다 억울하기가 여러 번, 눈물바람으로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남부러울 것 없이 글씨도 잘 쓰고 구구단도 척척 외우는 W는 아이가 고작 팽이를 자기보다 잘 돌리는 것에 충격을 받아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또, B의 집 마당에서 놀던 아들이 B에게서 집주인 텃새를 느끼고는 B를 밀쳐버리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은 분명 서로가 좋으면서도 아프게 하고, 즐거우면서도 화가 나는 아직은 모든 것이 덜 영글고 서툴기만 한 몸도 마음도 자라나야 할 시기였다. 그덕에 누구 아이를 먼저 챙겨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과 맞닥뜨리고, 어른들끼리 사과하고 넘어가기 애매한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하며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툰 우리도 조금씩 부모가 되어갔다.      

자주 아니어도 괜찮아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2년 전 S와 헤어져 자주 못 보게 되었다고 인연의 끈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이미 일상의 관계가 형성된 터라 두어 달에 한 번꼴로 연락을 하더라도 그 친분은 유지되고 영상통화로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메시지로 늘 이슈를 주고받는 양쪽 엄마를 통해 각자의 지내는 모습을 전해 들으며 일상의 공유는 지속되었다. 아이는 평상시에는 잘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도 문득 생각이 났는지 뜬금없는 타이밍에 친구들을 찾곤 했다. 그럴 때면 되도록 연락을 취해 아이들이 만날 수 있게 연결을 해준다. 8월쯤엔 S가 생각나는 타이밍이었다. 느닷없이 S네 가고 싶다 했다. 그렇잖아도 이번에 방학 때 나오면 새로 이사 간 영종도 집으로 초대한다고 했는데 연락해봐야지, 하고는 바로 만나 그 집에서 하루를 자고 왔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 밤을 뒤로한 채 S네는 또다시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S네가 말레이시아에서 막 짐을 풀 때쯤 등원을 시켜주는 차 안에서는 아이가 이번에는 B네 가서 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차를 잠시 세운 채 바로 제주도 있는 언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명절 끝이라 추석은 어떻게 보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11월쯤 제주에 내려갈 예정이라고 일정을 밝히니 언니는 새로 심은 핑크 뮬리를 보러 오라고 했다. 작년에는 서귀포까지 내려가 보고 온 핑크 뮬리를 이번에는 아들의 친구 집에서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이번 징검다리 연휴에 함께 놀러 가자는 W엄마의 제안을 거절해야만 했다. 신랑이 휴가를 쓸 수 없어 두 시간 동안 혼자 운전해서 갈 자신도 없고 회사 업무가 턱 끝까지 차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라도 좋은 날씨에 재밌게 놀 모습을 그리며 부러움을 전하니 우리 식구가 그립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멀리 있지만 연결된 느낌, 꼭 가까이 있어야만 친구가 아니란 생각이 다시 한번 강렬히 들었다. 어디서든 내 아이의 안부를 물어봐주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예쁘고 반가운 이 감정이 기분 좋았다.


가끔은 험한 세상을 마주하며 스스로 거를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다방면의 친구를 사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 어리고 연약한 아이들이 좀 더 단단해진 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렇게 멀리서도 서로를 기억하고 영향을 주며 자라는 아이들이 있어 조금은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아들은 갑자기 어떤 친구의 이름을 부를까, 제주도 사진관에 다녀오면 이제 말레이시아에 있는 S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내년 1월의 만남을 계획한 엄마들끼리의 약속이 아니라 아들의 그리움이 만들어내 아들의 의지로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꼭, 가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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