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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25. 2021

아이가 크는 동안 과거의 어린 나도 자란다

어린 날의 보상

아들의 나이 여섯 살 무렵 시작한 한글 책 읽어주기가 햇수로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내 인생에 이리도 잘한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 읽어주기를 꾸준히 해왔다. 나는 즉흥적이고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이어서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성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작한 무언가를 늘 얼마 못가 그만두고 마는 편이라 아이를 키우며 오늘 한 일을 내일도, 모레도 또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무언가를 배우게 하는 일이 나에겐 고역이었는데 책은 내가 소리 내어 읽어주고 학원직접 데려다줘야 하니 내가 지치면 아이는 기회도 과정도 모두 놓치게 된다는 생각이 때론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무게로 다가오곤 했다.


그런데 어찌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사실 책임감보다는 내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었던 일상이 반복되던 그 시절 나에겐 책도 학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책은 하굣길에 친구네 들려 빌려 읽는 것이 다였고 학원도 친구 따라 몇 번 가본 것이 전부여서 내 유년시절은 그렇게 방바닥을 뒹굴며 시간아 흘러라 흘러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를 키운다면 큰 계획 속에 흔들리지 않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갖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건 바로 엄마 목소리로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고심하고 발품 팔아 골라낸 양서들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최근엔 직접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읽어주는 걸 더 좋아하고 기대하기에 벌써부터 책 읽어주기를 그만두게 될 그날이, 나는 못내 아쉽다. 지금은 한글책에 더해 영어 원서를 추가했다. ‘한글 책’ 읽어주기는 아이 습관을 잡아주고 엄마에게 부족한 꾸준함을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면 ‘영어 원서’ 읽어주기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한글 책’ 읽어주기는 일하는 엄마기에 아이와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하는 점과 다른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점을 이유로 온전히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기 위함이었다면 최근 영어 원서를 추가한 건 그저 내가 궁금하고 재밌어서가 8할이다.      

어렸을 적 영어 원서를 읽기보단 겨우 알파벳 떼고 한국식 공부하다 뒤늦게 입 뗀 케이스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이나 놀이, 미국식 정서와 사고방식, 그들만의 유머 이런 게 가득한 그 책을 아들과 동시간대에 같이 읽은 게 너무 재미있다. 어릴 때 못해본 일을 아이 키우며 이제서야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그런 점에서 내 취미로 원서를 사 모으며 아이까지 가르칠 수 있어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아이도 원서 읽기를 영어 공부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문장과 번역식 교차 읽기에 속도가 늦어져 뒷부분이 궁금할 때면 앞에 영어 말은 읽지 말고 그냥 한글 이야기만 들려달라고 해맑은 표정으로 요청한다. 영어 원서를 공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 영어 학원을 보내지 않고 버티기 위한 엄마의 숨은 뜻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기에 우선은 교차 읽어주기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사실 영어책 읽어주기는 무조건 재미있는 것만도 아니고 꽤나 품이 드는 일이다. 아이들 책이라도 영어 단어가 생소하고 낯선 데다 평상시 잘 안 쓰는 것들도 많아 하나씩 확인해야 할 게 투성이다. 이렇게 품이 들며 가끔은 귀찮고 또 내가 읽어야만 아이가 읽을 수 있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좀 더 강도 있게 시키고 아이가 혼자 읽게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지만 아직까지 그건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글 책이든 영어책이든 엄마가 읽어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귀로만 듣지 않고 딴짓을 하다가도 꼭 그림을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영어 그림책은 신기할 정도로 그림책 안에 모르는 단어의 단서를 모두 유추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그림책을 보다 보면 영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지식도 쌓을 수 있다. 그래서 리딩스킬 위주의 책뿐만 아니라 그림이 아름답고 문장 구성이 좋은 책도 놓치지 않고 함께 읽어주려고 애를 쓴다. 물론 아이는 그 차이를 아직 알지 못하지만 엄마가 읽어주던 책에 자연스레 손을 뻗어 스스로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올 때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주고 싶다.      

내 유년시절과 비교해 또 한 가지 꼭 해주고 싶은 일은 적기에 아이에게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어릴 적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자란 나는 항상 학원 뺑뺑이에 돌려지지 않아 나름 행복했다는 자위와 함께 전문가의 손길로 꾸준히 무언가를 배웠다면 내 인생이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함께 달고 산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가 되기보단 집에 있으면서 아이 학원 라이딩을 해주는 것이 로망일 정도로 내 아이에게는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양육과 아이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해 나는 8세까지 유치원 말고는 아이에게 다른 사교육은 시키지 않고 지냈다. 대신 시작한 순간부터는 학원 일정에 맞춰 업무 일정을 옮겨서라도 등원이 가능토록 학원 라이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엔 축구였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읊조림을 모르는 척할 수 없어 연차를 쪼개고 쪼개 아이를 축구장으로 데리고 다녔다. 아직 축구선수의 길로 가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고 그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지만 최소한 기회의 싹을 자르고 싶지는 않아 나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운전을 하고 국가대표 출신 학부모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축구를 필두로 바둑이며 수영, 만들기 모두 등록부터 라이딩까지 그 모든 하나하나의 과정이 무난하거나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선택한 곳 모두 아이의 동의와 허락을 구하긴 했으나 학원 커리큘럼이 우리의 시간과 맞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횟수를 줄이거나 매주 시간을 달리해서 한주 한주 조율하며 수업을 받았다.


아이도 잘 따라주었다. 피아노나 태권도처럼 싫은 건 싫다 하고 배우고 싶다던 수업은  기대하고 즐기며 엄마와의 학원 라이딩 시간을 즐겨주었다. 그런 아이가 너무 예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나는 매번 이 수업을 가는 이유와 앞으로 얼마나 더 배우고 싶은지, 더 다니고 싶은 과목이 무엇인지 아이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며 조율을 했다.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는 주에 딱 세 군데까지였다. 그래서 한 번에 3가지를 넘어가는 일은 피했다. 일하는 엄마가 그것도 정규수업 자체가 늦게 끝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지치지 않고 그날 배운걸 제대로 소화하는 게 더 중요하기에 이틀에 한  꼴로 3가지 이상은 넘기지 않게 했다. 가능하다면 단가를 높여서라도 주 1회씩으로 조정하거나 금액이 고정일 경우 횟수를 줄이는 대신 요일에 구애받지 않고 등원할 수 있도록 학원 측과 협의를 했다. 그래서 우리의 상황상 축구를 중지한 후에야 과학실험을 추가할 수 있었고 피아노를 시작하며 수영을 정리해야만 했으며 검도를 배우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아이는 잘 알기에 지금 배우는 것에 더 충실한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것은 아이 학원 라이딩에 사교육이 핵심이라기보다는 아이를 데리고 경험시키고 오고 가는 과정에서 내가 새로운 영감을 받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활 초반 나는 내가 대단한 일을 해준다고, 나는 못 받은 혜택을 너를 위해 해주고 있다고 잠시 착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면서 정작 내가 변화하고 생활의 활력소를 얻고 있었다.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즐기지 않고 약속이 없으면 적극적으로 어딘가 가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렇게 아이를 이유로 어딘가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과 이동하는 장소에 따라 별거 아닌 일도 별 것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곳에서 장을 보고 주변 카페를 기웃거리다 의외의 맛에 즐거움을 맛보고 눈에 띈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학원을 우연히 검색해보고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오가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내 아이의  현재를 점검해 보는 일, 아이를 기다리며 즉흥적으로 헤어컷도 하고 평상시 잘 못 먹던 음식도 포장해놓고 바쁘단 핑계로 놓고 있던 책도 읽다 보면 대기시간 틈틈이 지루하지도 않게 시간이 잘도 간다.  그러다 보니 늘 배움에 목마르고 엄마와 함께 하는 걸 즐겨주는 아이는 과거의 어린 나를 보듬고 아직도 덜 자란 지금의 나를 성장시킨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영어 원서 읽기와 학원 투어를 하면서 ‘꼭 그때 배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마음과 ‘그때가 아니라면 안 되는 것도 있다’라는 두 가지 마음에서 늘 저울질을 하게 된다. 이 두 가지가 각각 어떤 곳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발현하게 될런지 나는 아직 모두를 알 수는 없다. 그러니 너무 안달하지도, 너무 방임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아이와 함께 가보려고 한다. 그 사이 나도, 내 안의 어린아이도 좀 더 자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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