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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Sep 27. 2023

야구하는 아이를 지원하는 현실적인 이유

만족하지만 만족할 수도 없는 딜레마

4학년 아들은 초등학교 엘리트 야구부이다. 야구를 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가 지금 저곳에 있는 게 맞는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한 계기는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무엇보다 기존 학교를 나오기 위해서였다. 아이의 현재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시기든 전학은 무척 힘들 것이라 염려되어 정말 수많은 고민의 날들이 지속되었고 입학 전부터 신중히 골랐던 그 학교를 졸업까지 시키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하지만 12시경이면 끝마치는 공교육 시스템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선택한 사립학교가 더 이상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보다 조금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고 보육이 목적이었던 그때보다는 한결 느슨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다시 한번 맘을 먹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제 아이만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친구가 생기고 애정이 자라나고 자신의 학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아이가 학교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이가 정말 사랑했던 학교.. 그러나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아이는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전학이 결정되자 입이 안 다물어질 만큼 차갑게 정을 떼준 그 학교에서 우린 아이 친구 세명과 엄마친구 세명을 만들고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야구 덕분이었다.


야구를 하기 전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사교육을 많이 시키지 않고 교육에 있어 나름의 소신을 지킨다는 자부심 비슷한 게 있었다. 어지간한 건 엄마와 간단히 학습하고 체험이나 활동 위주로 외부교육을 소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엄마 덕에 실제로 등록은 한 건 아니더라도 아이는 여기저기 끌려다며 상담을 받고 테스트를 받고 뭘 배울지 끊임없는 논의를 거쳐야만 했다. 그저 마냥 저냥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초등학교 시절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았다.

숙제가 많은 영수학원을 다닌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엄마가 관심 있는 학원은 대체로 바둑이나 과학실험 같이 숙제가 많지 않거나 거의 없는 것이고 심지어 결석에 대해 보강도 알뜰히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느려도 좋으니 지속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늘고 길게 노출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뭐라도 배워두면 나중에 자신의 관심분야를 발전시키는데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야구레슨장을 가게 되었다. 시작은 역시나 대단치 않은 이유였다. 엄마 지인이 운영하는 레슨장이어서 일주일에 한 번 엄마는 지인이모와 수다를 떨고 아이는 힘들지 않은 훈련을 놀이식으로 즐겨라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당연하게도 아이는 야구에 대한 흥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당시 엄마는 정식으로 영어학원을 정착할 목적으로 레벨테스트를 보러 다니며 사교육의 목록을 하나씩 늘리고 있었기에 이제 곧 야구레슨도 정리할 때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3학년 10월쯤 야구레슨장에 간지 딱 1년 정도가 되자 갑자기 아이가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취미가 아닌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위한 제대로 된 야구를!


띵! 하고 머리에 종이 울렸다. 야구를 하게 되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가야 하기에 전학이 수월할 수는 있지만 새로 세팅하고자 했던 학원들은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머리에 고민을 한가득 가진 채로 아이와 야구부 감독님 면담을 갖고 한 학기 동안의 유예기간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아들은 겨울방학이 끝나는 3주 뒤 바로 전학절차를 밟고 야구에 입문하게 되었다. 새 학기 시작을 새 친구들과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막연히 훈련 가기 전에 영어화상 수업과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겠다고 엄마는 다부지게 계획했으나 그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 되었다.


아이는 새 학기 첫날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야간훈련을 견뎌내야 했다. 그 덕에 사교육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감사해야 할 일인지 아직도 얼떨떨하다. 야구에 모든 일상이 잠식된 생활은 모자에게 전혀 상이한 반응을 불러왔다. 엄마는 굳이 이 고생을 왜 사서 해야 하며 야구만이 길은 아닐 수 있다고 (어느 한편으로 이 야구판에 밀어 넣은 책임을 뒤로한 채) 남의 일마냥 훈수를 두었고 아들은 힘들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색다른 면에서 나는 매력을 찾았다. 남자아이들만 있다 보니 좀 거친 언행이 오가기도 하고 군기랍시고 끊임없는 잔소리도 있었지만 형제가 없는 아이에게 북적북적 어울림은 그 무엇보다 큰 선물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아는 상태로 어울리게 할 수 있는 것도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학생이라면 그것도 초등학생이라면 분히 자고 충분히 먹고 충분히 땀 흘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던 대로 야구부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방과 후 시간에 어디로 무엇을 배우러 보낼지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고 바로 훈련에 돌입하여 잡념 없이 저녁까지 땀을 흘릴 수 있었다. 아이도 그걸 느꼈는지 얼마 전엔 야구를 하면 휴대폰 생각이 전혀 안 난다는 말을 해서 엄마를 미소 짓게 했다.


저항 없이 전학을 시킬 수 있었고 더 이상 사교육의 늪에서 발버둥 치지 않고 또래와 어울리며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기에 야구부 생활은 많은 만족감을 주었지만 그것만 바라보기엔 또 만만치 않은 냉혹한 현실이 가득하다. 솔직히 아직 미래를 걸지도 못했기에 하루하루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꿔먹는 일도 다반사다. 진지하지 못한 건 유감이지만 아이나 나나 진심이 아닌 건 아니다. 아이가 야구를 하는데 내가 조금 영향을 미쳤든 아니든 지금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아이가 야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지원하는 이유를 정리해 보니 가장 큰 이유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라서'라는 다행스러운 사실을 마주한다. 당분간은 이 마음 하나만으로도 아침저녁으로 아이 라이딩에 덜 지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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