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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Apr 22. 2023

제주, 가장 남쪽의 안전한 자유

제주여행 그림에세이 프롤로그

 한국에서의 삶은 촘촘하다. 남들도 빠른 속도로 살고 있어 실감하기 쉽지 않지만, 깨닫고 나면 이 곳에는 무언가를 돌아볼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내가 늘 있던 장소를 벗어나 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본래 속도와 궤도를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원래의 일상과 떨어져 있으면 비로소 바쁘게 살아온 나를 멀리서 볼 수 있다.


 수많은 곳이 있지만 제주를 여행지로 택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주도는 국내라서 떠나기 위한 준비가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략하고 부담이 없다. 서울에 사는 나에게는 제주가 이 나라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으면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까지가 이성적인 근거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감성적인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쯤은 아무 계획도 없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여권이 필요 없는 제주도야말로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직관적인 사유가 있다. 제주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친구가 언젠가 제주에서 커피 마시자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나는 캐리어와 신용카드와 신분증만 챙겨서 그렇게 제주도로 떠났다. 참, 나의 작은 곰돌이 인형도 함께 가방에 넣고.

 먼저 나열한 이성과 감성의 키워드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밑바탕도 깔려 있다. 이 여행을 떠나는 시기 나는 친한 친구의 배려로 가장 좋아하는 동네에서 '독립 연습 살이'를 하고 있었다. 혼자 살아가기에는 혼자 떠나기도 포함된다. 만약 독립한 내가 여행을 가면 어떨까? 그 연습의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기로 한 마음도 포함돼 있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이 제주 여행기는, 본래의 궤도와 루틴에서 벗어나 안전함이 어느 정도 보장된 모험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체험기가 될 수도 있겠다. 또한 온전히 혼자임을 경험해보고 싶으나 항상 엄두가 나지 않았던 친구들을 위한 '용기의 참고서'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 훌쩍 떠난 여행에서 탄생한 장면들의 그림책일 수도 있다. 무엇에 해당하든, 혹은 모든 것을 조금씩 맛보고 싶든, 각자 마음대로 느끼는 자유가 나의 제주 여행기에서 묻어나길 바란다.


2023년 서울에서

사랑과 용기를 담아, 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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