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삶은 촘촘하다. 남들도 빠른 속도로 살고 있어 실감하기 쉽지 않지만, 깨닫고 나면 이 곳에는 무언가를 돌아볼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내가 늘 있던 장소를 벗어나 마음을 먹어야만 갈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본래 속도와 궤도를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원래의 일상과 떨어져 있으면 비로소 바쁘게 살아온 나를 멀리서 볼 수 있다.
수많은 곳이 있지만 제주를 여행지로 택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주도는 국내라서 떠나기 위한 준비가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략하고 부담이 없다. 서울에 사는 나에게는 제주가 이 나라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으면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까지가 이성적인 근거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감성적인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쯤은 아무 계획도 없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여권이 필요 없는 제주도야말로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직관적인 사유가 있다. 제주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친구가 언젠가 제주에서 커피 마시자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나는 캐리어와 신용카드와 신분증만 챙겨서 그렇게 제주도로 떠났다. 참, 나의 작은 곰돌이 인형도 함께 가방에 넣고.
먼저 나열한 이성과 감성의 키워드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밑바탕도 깔려 있다. 이 여행을 떠나는 시기 나는 친한 친구의 배려로 가장 좋아하는 동네에서 '독립 연습 살이'를 하고 있었다. 혼자 살아가기에는 혼자 떠나기도 포함된다. 만약 독립한 내가 여행을 가면 어떨까? 그 연습의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기로 한 마음도 포함돼 있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이 제주 여행기는, 본래의 궤도와 루틴에서 벗어나 안전함이 어느 정도 보장된 모험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체험기가 될 수도 있겠다. 또한 온전히 혼자임을 경험해보고 싶으나 항상 엄두가 나지 않았던 친구들을 위한 '용기의 참고서'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 훌쩍 떠난 여행에서 탄생한 장면들의 그림책일 수도 있다. 무엇에 해당하든, 혹은 모든 것을 조금씩 맛보고 싶든, 각자 마음대로 느끼는 자유가 나의 제주 여행기에서 묻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