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 메일을 보내는 그 남자
가끔, 지나간 시간 속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곤 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나는 어찌 지내는지 안부를 묻거나
담담한 그리움 한 조각을 담아
보내기도 하고
지난 시간 속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미처 하지 못했던
사과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기억 한 자락을 꺼내 곱씹는
쓸쓸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줘서
고마운 사람도 있고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니
소름이 끼치는 사람도 있다.
이미 다 지나간 과거니까
다 같은 마음으로 반가워할 만큼
쿨한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남긴 기억의 무게만큼
반응하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가 직접 쓴 시 몇 편과
그가 좋아하는 오페라와
피아노 연주곡들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그의 메일은 그리움이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그에 대한 감정은 뭘까 들여다본다.
이미 사랑은 끝났고,
시간은 지나갔다.
그가 나에게 저질렀던 아팠던 순간들은
이미 그저 추억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메일을
그저 반가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메일에 묻어있는 회귀본능이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나면
나에게 보내는 메일
..... 처음이 아닌
그의 버릇이 날 또 시험한다.
그저 과거로만 남았다면
아름답게 기억되었을지 모를
우리의 시간에
자꾸 해작질을 한다.
.... 결국 그는 나에게 그리움을 보냈는데
나는 부끄러움을 받았다.
나는 왜 그를 사랑했던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어 부끄러워지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