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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pr 13. 2017

너무 맞고 안 맞고?

잘생긴 남자 만나기 #2

세상에 완벽한 남자가 있을까? 우리 브라운관을 통해 간간히 만나는 잘생긴 외모, 출중한 기럭지에 인격까지 겸비한 배우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인지라 상상의 나래 밑에 남겨두는 수밖에. 그도 그랬다. 겪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잖아? 


그의 학교 방문 이후, 우리 사이는 더욱 가까워지는 듯했다.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인기인의 여자 친구가 공개되었으니 나름 후폭풍이 있긴 했나 보다. 인기가 추락했다며 엄살을 떨더라. 결국 관리 어장에 폭탄 던진 셈이 되어 그는 나에게 올인하게 되었달까?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다. 당시 성대시장 즈음에 살던 나와, 노량진 언저리에 사는 그의 물리적 거리가 멀지 않으니 만나는 횟수도 시간도 쉽게 늘어났다. 우리의 주무대는 노량진. 친구 커플 둘 다 노량진에 살다 보니 노량진에서 만나는 횟수가 월등히 많았다. 당시 대학입시 학원의 메카였던 노량진인지라 재수생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공략하는 삼겹살과 소주, 파전에 막걸리, 백반에 생선구이등 소박하고 끈끈한 식문화를 즐겼다. 


멀끔한 얼굴이지만 소박하고 털털한 입맛이었던 송승헌 도플갱어라. 꽤나 괜찮은 조합이다. 더군다나 간간히 작은 이벤트를 벌이는 걸 좋아해서 만날 때마다 작은 머리핀이나 동전지갑, 소소한 선물들을 챙겨 나오곤 했다. 달콤한 일면까지 갖췄으니 조금의 문화적 취향 차이는 대수롭지 않았다. 


책보다는 영화, 예술영화보다는 액션, 블랙코미디보다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즐기는 나와는 상반되는 취향의 소유자.  그럼 뭐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순 없어도 함께 영화 보러 가고, 예술영화는 혼자 봐도 되고, 슬랩스틱 코미디는 다른 사람이랑 보라고 해두고, 액션 영화 정도로 절충해서 함께 봐줄 수 있었다. 소소하게 맞춰가는 것도 재미 아니겠나! 


먹고 마시고 보고 듣는 것을 맞춰가는 연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다. 결국 맞추거나 혹은 맞추지 못해 헤어졌다. 2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너무 맞춰서 또 하는 절대 맞출 수가 없어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너무 잘 맞춰서 헤어지게 된 이야기부터 하자. 

나는 요상하게 촉이 좋았다. 몸에 거짓말 탐지기가 탑재되어 있는 양, 남에서 남자 친구로 나에게 로딩되는 순간 스위치가 탁 켜졌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온몸이 간질대면서 신호가 왔다. 무슨 거짓말을 하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맞춰도 너무 잘 맞춰버리는 내 촉이 사단이었다. 물론 그는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없는 드문 날 중 하나였다. 그날 나는 아르바이트와 저녁 시간에 다른 일이 있어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그는 초등학교 동창과 만남이 있다고 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그는 그의 일을 한 다음 날 만난 우리, 찌릿 반응이 왔다. 뭐지?


"어제 초등학교 동창은 잘 만났어?"

"응 잘 만났지."


"그래, 오랜만에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니까 좋아?"

"어? 어..... "


"초등학교 동창이 여자라는 건 왜 말 안 했어?"

"어.. 그게.... 아니...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내가 그랬잖아. 다 안다고. 첫사랑 정도 만나는 거야 뭐."

"누가 그래? 재범이? 아니 희진이가 그래?"


"아니라고는 못하네? 그냥 찔러본 건데"

"........"


그랬다. 이분은 학교에서 관리할 수 없어진 어장을 다른 곳에 새롭게 개장하시고 관리 개시하신 게다. 이런, 이래서 잘생긴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고 한 것인가? 어장관리를 끊을 수 없는 송승헌 도플갱어님이 내 남자 친구 리스트에서 구자를 하나 앞에 단 구 남자 친구 리스트로 옮겨간 첫 번째 이유는 맞춰도 너무 잘 맞추는 내 촉을 속일 수 없는 거짓말과 어장관리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얼굴값이라는 말로 대충 이해 가겠다마는 다음 이유는 나름 반전이었다. 본론부터 꺼내놓기 뭐하니 그날로 돌아가자. 


이야기는 나의 친구와 그의 남자 친구가 우리 커플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우리 넷, 두 커플은 내 친구의 남자 친구이자, 당시 남자 친구의 친구의 집에 모였다. 간간히 그 집에 모여 영화도 보고 맛난 것도 시켜먹던 터라 그날도 그냥 그런 날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 생각했다. 넷이 모여 한 참 수다를 떨다가 둘이 먹을 걸 사러 가겠단다. 없던 일이었다. 보통은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남자 둘이 나가 먹거리를 사 오곤 했는데 이날 따라 친구 커플이 부득불 둘이 가겠다고 우겼다. 너무 냄새나게 둘만 남겨두려는 의도가 폴폴 드러났다. 계속 남자 둘이 다녀오라고 했다가는 눈치 제로녀 취급받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그래 가려무나. 둘이 총총 사라지고 그와 나 둘이 남았다.


이제 수순이다. 음악을 듣다가 눈이 마주치고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키스는 이미 했지만 그 이상의 신체접촉이 없던 둘인지라 더 어색했다. 아... 이런 오글거리는 분위기 딱 질색인데...... 눈동자가 뭐냐, 온몸을 어디에 둘지 몰라 민망함이 터질 즈음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숨소리는 물론이고 피부의 열기마저 전해질만큼 가까워졌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포개지니 오히려 민망함이 조금 덜어지는 듯했다. 떨리는 순간~ 아 이제 귓가에 종이 울리려나? 그의 손이 내 몸 여기저기를 훑는다. 19금 수위를 막 넘나들기 시작한 그때, 둘이 함께 침대 위로 넘어갔다.


은근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내심 남자끼리 다 이야기된 상황이니 갑자기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할 필요는 없겠구나 싶었다.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빠르게 지나가는 속도만큼 그의 몸은 뜨거워졌다. 음.. 그런데... 이게 뭐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그의 다리 사이에 내 다리 한쪽이 끼워져 있고, 예민한 편인 내 감각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치채셨나? 여. 자. 야? 할 만큼 밋밋하다. 보통 이런 순간이면 내 다리 위로 단단한 무엇이 부담스럽게 느껴져야 하는 거 아니야? 몸만 뜨겁게 달궈지고 그의 저 아래는 아직 달궈지지 않은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지 싶어서 자꾸 다리를 더 움직이니 본의 아니게 그의 숨숨 점점 거칠어지고, 몸은 더더 뜨거워졌다. 


그때 갑자기 

"하아.... 하악"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모든 건 그렇게 끝이 났다.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혼자 거사를 끝낸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말을 잃었다. 


기럭지도 얼굴도 성격도 좋은데 그것까지 완벽하면 신이 너무 불공평한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래 신의 공평함을 증거 하는 남자 친구 하나쯤 있어도 좋겠지만 나는 사절하고 싶었다. 그건 뭐랄까 어렸던 나에게는 맞출 수 없는 벽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당황하지 않도록 다독이며 말을 건넬 수 있는 만큼 경험치가 없었다. 민망함이 전후좌우에서 밀려들어와 도망치라고 재촉할 뿐이었다. 


도망쳤다.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거나, 급한 볼일이 있다거나 하는 흔한 변명도 없이 서둘러 남의 집을 빠져나왔다. 자기 앞을 떠나는 나를 그도 잡지 못했다. 하다못해 이름을 부른다거나 어디 가냐고 묻지도 않았다. 우린 둘 다 아직은 어렸고 그런 상황에 어떻게 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건지 몰랐으니까.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직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무 말 없이 젖은 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를 남의 집에 두고 도망가지는 않았으려나? 


결국 나의 잘생긴 남자 만나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 트라우마는 좀 길게 남아서 과하게 잘생긴 남자가 관심을 표명해오면 어장을 의심하거나, 다리 사이를 의심하게 되었다. 물론 잘생겼는데 어장 관리도 안 하고 다리 사이도 멀쩡하신 분들은 매우 억울하시겠지만 말이다. 


참! 수년 후 우연히 강남역에서 그와 마주쳤다. 얼굴 뜯어먹고 살 거 아니라지만 잘생긴 남자 친구가 간간히 아쉽긴 했었는데, 강남역에서 마주친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더라. 지금의 잘생김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것이니, 다른 것이 집중하자고. 


끝!




수개월 만에 쓴 2편

아... 손발이 오그라들어 성인물은 못쓰겠구나.

요거 쓰는 데도 죽을 뻔했네요. 

사실 이별의 이유는 후자가 더 큽니다. 

지금 저런 분을 만나면 어떻게 하려나, 제 스스로도 궁금하긴 합니다만

역시, 전 평범 속에 매력 넘치는 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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