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더 좋아하긴 하지만, 나물은 어렸을 때도 딱히 싫어하지 않고 먹는 반찬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시골 사람이어서 그런지 친구네 밥상에는 잘 오르지 않는 나물들도 우리 가족들은 찾아먹었다. 생긴 것도 비슷비슷, 양념도 비슷비슷한 것들이 향이며 맛이 달랐던 게 어린 나이에 꽤 신기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물을 무칠 때마다 싱크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꼬치꼬치 캐물으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만드는 방법이나 언제가 제철인지 설명해줬다. 어린 딸이 알아듣길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어른이 되면 꼭 필요한 소양이라는 듯이 차근차근, 천천히 말해주었다.
‘조기교육’을 받은 덕인지 취나물이나 방풍나물 같이 무치고 나면 고만고만한 것들을 퍽 잘 구분했다. 학교 다닐 땐 거의 유일한 즐거움인 급식 메뉴를 미리 체크하면서 나물반찬의 맛을 알아갔다.
엄마가 반찬을 못하게 되면서 내가 나물을 무치는 날이 더 많아졌는데 최근에 꽂혔던 건 세발나물이다. 이른 봄에 주로 나기 때문에 세발나물이 보이면 봄이 왔다는 뜻이다. 나물 자체에 짭조름한 맛이 있어서 소금 아주 조금과 참기름, 참깨만 넣어 무치면 완성이다. 세발나물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입맛이 돌아오는 데 그만이다. 꼬독꼬독 씹히는 맛이 꼬시래기와 비슷하다.
나물이 먹고 싶을 때 실패 없이 먹는 건 참나물과 방풍나물이다. 참나물은 간장과 방풍나물은 고추장과 잘 어울린다. 30초 정도 살짝 데친 뒤 간장이나 고추장에 다진마늘, 참기름, 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된다.
고사리무침과 도라지무침은 최근 성공한 나물이다. 처음부터 다듬는 건 자신이 없어 손질이 돼있는 걸로 산다. 다진마늘과 들깨가루 같은 걸 넣고 후라이팬에 살살 볶으면 금방 만들어진다. 버섯을 살짝 데치고 같은 양념을 해도 맛있다.
나물은 금방 상하기 때문에 애초에 조금만 만들어둔다. 그래도 남아있다면 양푼비빔밥으로 해치우면 된다. 볶음고추장에 겉이 바삭하게 구워진 계란 프라이를 두 개 얹어 쓱,쓱, 비벼 먹으면 한끼는 뚝딱이다.
요즘 들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건 결혼 직후부터이고, 그마저도 본격적으로는 1년이 채 안될 거다. 그 사이 만들 수 있는 음식 가짓수는 크게 늘었는데 뭘 만들어도 고만고만한 맛이 난다. 비슷한 나물에 비슷한 양념장을 써서 그런 줄 알고 새로운 반찬을 도전해보긴 하는데 맛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조미료를 만든 공장 문제는 아닐 테니 내 손맛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