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길고 긴 그런 밤을 보낸 적이 있다. <중략> 내 마음속에 뭐가 있든 그건 다 내 감정이었고 그건 다 나였기 때문에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가 없는 그런 밤이었다. - 164p, 야간비행 中
올해 들어 밤에 자주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었지만, 초여름의 밤공기, 이따금 내리는 빗속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흙내음 속에서 오드리 헵번이 불렀던 문리버를 흥얼거리는 일이 제일 좋았다. 손에는 맥주 한 캔을 쥔 채로 빗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만큼은 낭만을 품에 안고 있는 기분이 든다. 문리버를 부르며 초여름밤의 달을 보는 일이 한동안 내 일상이었다. 그렇게 새벽에 들어서면 휘청휘청 걸으며 꼭 누군가와 통화를 했는데, 그 사람은 이제 밤과 새벽, 달과 별을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는 뭐든 도망치고 싶을 때 달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는데, 마음속 결핍은 한결같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그런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전화기를 부여잡고 운 적이 한 번 있다. 결핍이 원인인지, 술이 원인인지, 아직도 내가 그때 왜 울었는지 모른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어서 그랬나. 훗날, 결핍이 사라지고 내가 나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난 안 아플 수 있을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아온 내 인생이 너무 가련해서…. 무채색 같은 삶을 살았다. 앞으로 칠하면서 살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어쩐지 나는 반갑기보다는 아플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자꾸만 이렇게 눈을 또 감는 거야… - 167p, 감춰진 나를 스스로 본다는 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