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픽션을 읽고
오늘 읽은 책은 '시티 픽션' 이라는 단편 소설집이다. 내 하루는 어째서인지 항상 시간이 촉박해서, 매번 다 읽지 못하고 글을 쓰게 된다. 7명의 작가가 적은 7개의 단편 소설들. 그중 앞의 <봄날아빠를 아세요?>, <스노우> 밖에 읽지 못했다. 이 앞의 두 소설을 읽으며 받은 이 책의 인상이 따로 있었다. '아 혹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혹은 사회에 관련된 픽션을 모아둔 책인가?'라는 생각. 판타지 소설이 아니고서야 소설은 우리가 혹은 남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놓지만, 이 책은 특히나 더 그랬다. (때로는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데, 소설이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봄날아빠를 아세요?
이야기는 신영진이라는 가상의 지역에서 시작한다. 신영진 주민들의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신영진 사는 사람들에는 봄날아빠라는 닉네임을 가진 유저가 주기적으로 글을 올린다.
1. 신영진 부동산 중개업소의 진실
2. 신영진 학군 목동 못지않다
3. 동아1차 방향으로 영진역 3번 출구가 생긴다면?
꿇릴 조건 하나 없는데 중개업소 가격 후려치기에 서울 내에서 신영진만 집값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글, 분위기가 좋지 않던 신영진 내 학교들이 바뀌고 학원마저 목동에 꿇리지 않는다는 글, 동아1차 방향으로 3번 출구, 공공도서관,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글.
이 글을 쓴 봄날아빠는 누굴까. 동아1차에 집을 사 이사 왔지만 집값이 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용근 씨일까, 동네에서 어느덧 큰 학원을 운영하면서 신영진이 목동만큼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찬이 엄마일까, 한때 현대아파트 입주민 대표였고 딸을 위해 동아1차에 집을 사준 안승복 씨일까.
이 소설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아주 흔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어려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직 내가 마주해보지 못한 일들이라 그런가 보다. 그런데도 봄날아빠가 누구인가 생각하게 되는 열린 결말은 여운이 남아 마음에 들었다.
봄 날 아 빠 는 누 구 일 까. 손바닥에 땀이 차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 48p
스노우
어느 날, 서울은 진도 6.5에 이르는 대지진을 겪게 된다. 새벽 중에 일어난 지진은 서울의 대부분을 앗아갔다.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은 건물들은 모래처럼 바스러져서, 가스 누출 등의 문제로 몇몇 건물들은 화재에 휩싸이게 된다. 이건 문화재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묘도 화재에 휩싸여 예전처럼 휘황찬란하고 압도되는 기운을 잃어버렸다. '이도'는 종묘에 관해 설명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지진 이후로 허망한 마음으로 문화재청으로 찾아가 따지지만, 매번 좋은 답변을 듣지는 못한다. 종묘의 경비로 일하고 있는 '서유성'은 꿍한 마음에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이도 대신 이따금 관광객들에게 신나서 설명하고는 했다. 둘은 술을 마시며 종묘에 대한 이야기, 혼자만의 회상을 할 때도 있다. 아름다웠던 종묘, 지금의 종묘. 복잡미묘한 기분을 안고 종묘로 돌아가니 거기엔 하얀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이미 3개월 전부터 찾아왔던 길고양이로, 유성은 그 고양이를 스노우라고 부르고 있었다.
가상의 자연재해 이후로 폐허가 된 서울, 그 안에서 사는 두 남자가 종묘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짧은 단편소설이다. 줄거리를 상당히 많이 생략하긴 했지만, 이도와 서유성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때로 참담한 현실과 찬란한 과거를 그린다. 특히나 둘은 역사에 대해 남달랐으니, 과거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읽으면서 좀 많이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외에 세종과 이름이 똑같다는 어필로 면접에 붙은 '이도'의 비하인드 등 유쾌한 이야기가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그때 부는 바람과 그때 내리는 비와 눈이 정말로 근사한 것이었구나. 그러나 사라졌다. 종묘는 무너졌고 정전은 불타 재만 남아 이제는 흙과 눈이 덮였다.
- 8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