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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이오 Jul 19. 2021

14일차, 버려진 도시에는 누가 살까.

시티픽션을 읽으며.

하루는 어째서 이렇게 부족할까... 이것저것 하니까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글을 써야 하니 책을 읽을 시간이 오히려 터무니없이 줄어든다는 아이러니함이 생겼다.

나중에 한 달 읽기가 끝나면 나 혼자서 책을 느긋하게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겠다.



이 소설은 시티 픽션 안에 수록되어있는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이라는 단편 소설이다. 나는 이게 시티 픽션 안에만 있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밀리 오리지널로 별개로 책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의 이름은 의진으로, IT 회사에 다녔다가 저축으로 집을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회사를 나오게 된다. 나오면서 같은 회사에 다녔던 연석과 만남을 이어간다. 의진은 IT 회사에서 나온 뒤, 중국인이 많은 동네에서 살며 직업소개소에 취직을 한다. 부동산에 관해 공부하면서 고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값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구시대적인 자기 동네가 마냥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의진은 이따금 강을 건너 건너편 동네에서 산책하는 날이 잦다. 어느 날 회사 사장이 내연녀의 어머니 생신을 챙기기 위해 고급호텔 상품권을 중고마켓에서 사오라고 한다. 사장의 심부름도 할 겸, 연석의 2주년을 챙기기 위해 상품권을 양승미라는 여자에게서 10장이나 샀지만, 의진은 그만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전액을 양승미에게 돌려받았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았던 의진은 양승미가 우편 발송할 때 적은 주소를 향해 찾아간다. 거기는 재개발 예정인 버려진 동네. 의진은 양승미가 낡은 동네에서도 쫓겨나고 서울에서도 쫓겨나 멀리 떠나게 되고 그렇게 사기까지 하게 된 걸까 하는 감상에 젖게 된다.


버려진 도시에는 누가 살까. 지금은 살지 않은 양승미가 예전에 살았을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일 테다. 썩어가는 붉은 소파를 바라보며, 빛바랜 누군가의 앨범을 바라보며 의진은 버려진 도시에서 덩그러니 혼자. 피로했고, 화도 났고, 쓸쓸하기도 했고, 서글펐고, 허탈했고, 외롭다는 감정이 들었다. 이 감정은 뭐라 표현해야 할까. 감정은 언제나 뒤죽박죽이다.


이 책은 그간 시티 픽션에 실린 소설, 내가 읽어본 소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내용 같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부동산 내용. 투자는 '갭투자'. 볼품은 없지만, 한강뷰를 가진 집을 가지고 있는 연석. 그런 연석의 집이 재개발되고 한강을 바라보며 연석과 삶을 꿈꾸는 의진, 중고 사이트에서 거래했다가 사기를 당한 것까지. 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현실의 쓴맛을 잘 녹여낸 이야기다.

소설을 읽고 무슨 기분을 느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나는 이미 현실을 살고 있고, 책 속에서 현실을 바라볼 뿐이니, 그저 그런 감정. 무덤덤함. 굳이 감정을 꺼내 표현하자면 씁쓸한 정도. 현실에서 현실을 바라본다는 씁쓸함.




언젠가 새로 지어질 그 집은 나의 집이었다. 문을 열면 익숙한 냄새가 마중 나오는, 나의 집이 되어야 했다. 하얏트 식사권을 구입하는 것만이 연석과 한 단계 더 깊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이 일에 매달리는 마음이었다.
- 164p

손끝을 바라봤다. 진실과 거짓을 손끝으로 감각했다는 것.
- 181p


태양이 세상 밖으로 잠기며 하늘은 점점 붉게 타들어갔다. 검붉은빛이 높은 빌딩을,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강물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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