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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화과 나무에 붙은 이끼를 보기 위해 덤불 속에 들어갔다 온몸에 뭔가를 잔뜩 묻히고 나왔다. 처음엔 덤불에 포진해 있던 버섯 포자가 묻은 줄로 알았다. 가볍게 털어내려는데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 개미였다. 복숭아뼈를 타고 올라간 붉은 개미 군단은 어느새 그녀의 왼쪽 무릎과 옆구리를 지나 오른쪽 어깨를 점령하여 등을 타고 내려갔다. 삽시간에 만들어진 붉은 뫼비우스의 띠. 자기 몸에 벌어진 사태를 파악한 여자는 호흡이 가빠 왔다. 그리곤 처절하게 몸을 털기 시작했다. 광광 뛰고, 후후 불어도 보았다. 땅에 드러누워 흙에 몸을 세차게 비비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길목을 형성한 개미 군단은 마치 중생대부터 그 길을 이용했다는 듯 흐트러질 생각이 없었다. 여자의 몸부림에 흥분한 붉은 개미들은 더욱 치열하게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팔꿈치와 목덜미 곳곳에 붉은 피가 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여자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제발, 나 좀 구해줘.’ 하지만 남편은 별도리가 없다는 듯 배낭 멘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는 그 배낭을 벗겨 남자의 머리통을 한 대 갈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던 여행객이 안 됐다는 눈빛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물속에 뛰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구먼.” 바로 1미터 옆에 연못이 하나 있었다. 물에 들어가면 이 개미들이 흩어질까. 하지만 여자는 수심을 가늠할 수 없는 진녹색 뻑뻑한 물속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났다. 밀림의 연못 속에 어떤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현미경 안경을 쓴 남자 하나가 무심하게 다가왔다. 멀리서부터 그녀의 상황을 지켜본 모양이었다. 남자는 안경에 달린 현미경으로 여자 몸을 덮은 붉은 개미 군단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핏대 선 여자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어차피 눈먼 개미들이에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더니 5분 전 여자가 들여다보던 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땄다. 무화과는 익을 대로 익어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쉽게 뭉그러졌다. 그 조각들을 여자의 몸에서 30센티 떨어진 바닥에 두었다. “곧 해결됩니다.” 여섯 글자에 담긴 남자의 확신을 여자는 믿어보기로 했다.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쓱 풀렸다. 억겁과도 같은 90초의 시간이 지났다. 무화과의 달큰한 향을 맡은 개미 한두 마리가 더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여자의 발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앞장선 개미들을 따라 수만 마리의 개미들이 노선을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개미들은 조금 전 여자의 몸에 그러했듯 무화과 열매를 점령하고 있었다.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진한 뫼비우스의 띠가 옅어졌다가 사라졌다. 여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어이없는 일과 뜻밖의 해방감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한편으론 궁금했다. 땅에 떨어진 무화과를 더듬어 한 덩이를 집어 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얼굴 가까이에 갖다 대 보았다. 붉고 물컹할 뿐 아무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개미들은 왜,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왜…. 어떻게 된 일이냐,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냐 물어볼 참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현미경을 쓴 남자는 이미 덤불 너머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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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嗅覺, olfactory)
냄새를 맡는 감각. 기체 상태의 자극물이 코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여 생기는 감각을 이른다.
․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일부였으나 현재는 퇴화하여 시각, 청각, 촉각의 삼감(三感)만이 존재한다.
․ 물질에 코를 갖다 대거나 공기 중에 있는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면 본연의 향을 감지할 수 있었다.
․ 후각이 민감한 사람은 물질 또는 물체뿐만이 아니라 계절에서도 냄새를 느끼고, 사람들에게서도 고유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었다.
․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번졌다. 대표적인 증상은 발열, 기침, 폐렴과 같은 호흡기 감염증이었으나 완치 후 후각, 미각을 상실하는 후유증이 있었다. 대개 2~4주가량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되었다.
․ 2043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레이터 바이러스(LATER-43)는 앞선 코로나바이러스보다 30배가량 강력한 호흡기 바이러스였다. 감염 직후에는 호흡곤란, 비염, 두통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증상이 발현되지만, 감염 후반부에는 후각과 미각을 완전히 잃게 되어 회복이 불가능했다. 빠른 감염 속도가 백신 및 치료 약 개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여 인류 93퍼센트 정도가 감염되었으며, 이후 후각과 미각은 완전히 퇴화한 채로 인류가 생존해 왔다.
․ 현재 후각은 아프리카코끼리, 열대 지역의 붉은 개미 정도에만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The Soul of the Rose>,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8.
장미의 향기를 맡고 있는 여인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2236.07.0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