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뤄두던 석연화 분갈이 작업을 감행했다. 그간 좁은 화분 속에서 답답했을 녀석의 고충을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다. 식집사까진 아니지만, 식물가족이 하나 둘 늘어가며, 버릇 하나가 생겼다. 식물과 자꾸 대화를 한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말할 때 서로 마주 보는 건 맞지만, 일방적으로 말이 갈 뿐 돌아오진 않으니. 이 경우엔 ‘혼잣말’ 정도로 해 두려 한다. 예전에 엄마가 꽃 화분을 보고, ‘ 작년엔 그렇게 예쁘게 피더니, 올해는 왜 다른 얘들은 다 필 동안 꽃이 보일 생각을 안 하는 거냐며, 반성해라.’ 고 화분을 재촉했다. ‘ 엄마, 말도 못 알아듣는 식물한테 자꾸 뭘 그리 말을 하셔.‘ 그땐, 엄마의 그 모습을 보고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늘 화분 분갈이를 해주며, ‘ 많이 답답했지? 그간 무심해서 미안했다.’ 고 말하는 나를 보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늦은 분갈이로 미안한 맘에 알비료는 석연화 거. 파란 커피는 작업하느라 수고한 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