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우리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날 일 겁니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아? 나 너 좋아해. 정말로….”
그때도 느꼈던 거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고백이 참 투박했어요. 물론 결과는 거절이었습니다. 투박해서 안 된 걸까? 좀 더 멋지게 말했으면 잘 됐을까? 고백의 결과에는 전혀 상관도 없을 이유들을 곱씹던 차 올려다본 하늘이 참 예쁘더라고요. 그래, 참 잘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 몇 달을 속 끓였던 일이 단번에 사라졌다 생각하니 그제야 속이 후련해졌습니다.
“정말 잘한 거야. 진짜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날 제가 서 있던 곳이 봄철 서울 명소로 유명한 벚꽃 축제 장소였거든요. 주변이 온통 예쁜 것들 투성이었어요. 하늘도 예쁘고, 꽃도 예쁘고. 사진이나 찍어보자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켜고 셔터를 눌렀는데 갑자기 코 끝이 시큰해지는 거예요. 꽃가루 알레르기도 없는데 왜 이러지... 코를 훌쩍거리는데, 눈물도 왈칵 쏟아졌습니다. 맞아요. 세상에 누가 거절을 당하고 괜찮을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 하늘이, 예쁜 꽃들이, 즐거운 사람들의 표정이 그때의 제 마음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괜찮다고 외면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왈칵 터졌던 것이죠.
이렇게 좋은 날이, 좋을 수밖에 없는 계절이 야속했습니다. 사람 속도 모르고 예쁘기만 한 꽃들까지 말이에요. 너는 네 사랑을 만개했구나, 내 사랑은 피기도 전에 저버렸는데. 곳곳마다 만개한 사랑 속에 섞일 수도, 숨을 수도 없는 내가 너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 시절에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무리 애써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되겠냐 하는 것들이요. 피는 게 있으면 지는 게 있고, 지는 게 있으면 피는 게 있는 거겠죠.
벚꽃이 지면 다른 꽃이 피듯이 우리 삶도 어떤 하나가 지면 또 다른 새로운 하나가 필 겁니다. 우리는 그 하나가 필 때까지 그냥 살면 됩니다. 평소처럼 말이에요. 이렇게 털어낼 줄도 알아야죠.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씩씩하게 살아내야 하니까요.
그때 그 벚꽃들은 금방 졌습니다. 제 슬픈 마음도 시간 속에 졌고요. 하지만 몇 년 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날 떨어지던 꽃잎들일 거예요. 꽃은 지는 모습조차도 아름답구나를 처음 알았거든요. 나풀나풀 흩날리며 지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빨개진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던 제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때 지던 제 사랑도 꽃잎처럼 나풀나풀 아름다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