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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os May 02. 2016

나는 왜 음식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내 영혼의 소울푸드.

전 음식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 좋습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음식과 관련된 것들이 좋습니다. 먹는 것도 즐겁고, 보는 것도 재미있고, 이런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좋아합니다. 물론 직업도 음식과 관련된 일 입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오늘 문득 뒤돌아보니 가족 때문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외할아버지


저희 외할아버지는 이북에서 막내 귀염둥이로 살다 홀로 일본에 유학 가셨습니다. 엄마에게 전해 듣기로는 중

학교 시절 일본으로 유학 가시면서 늘 엄마를 그리워하며 외로운 유학생활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희 할아버지에게 이북 음식과 일본음식은 할아버지의 추억과 삶이 담긴 '소울푸드'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저는 외로움에 묻혀 다소 괴팍하기 짝이 없던 할아버지의 그 '소울푸드'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평양냉면집에 가서는 불고기를 시켜주지 않는 게 늘 불만이었고, 어쩌다 한번 할아버지가 찾는 정통 일식당의 메로구이는 제 입맛에 너무 들큼하고 질렸습니다. 할아버지가 경험한 그 시절의 음식. 저는 그걸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피아노로 '클레멘타인'을 배워 친 적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곡조에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읇조리던 가사들이 문득 생각납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노래 클레멘타인 중에서


할아버지는 이 노래를 들으며 철 모르던 자신의 모습과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참 시절이 우스운 것이 그렇게 지겹고 싫던 할아버지의 음식들이 이제는 제 인생의 '소울푸드'가 되어 마음 한편에 눈물 나게 자리 잡게 되더라고요.


엄마


다음으로 우리 엄마. 초등학교 시절, 도무지 이걸 왜 보는지 모르겠던 영화 '미션', '아마데우스'를 데리고 다니며 엄마 혼자 그 분위기에 취해 한 번 더 볼만큼 엄마는 저에게 다양한 서양의 문화에 대해 늘 소개해주는 존재였습니다. 영문학과 출신으로 세련된 패션으로 꾸미고 다니던 엄마는 이대 앞 그린하우스에서 맛있는 빵과 귀하고 귀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맛보게 해주었으며, KFC의 비스킷을 간식으로 사주었습니다. 도무지 맛이 없던 V8이나 오레오와 야채크래커도 자주 먹던 간식이었습니다. 작은 경양식집의 사장이 되어 나의 무수한 추억의 사진을 찍어주었던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며 따뜻하지만 나약한 엄마. 하지만 가끔 내 친구들을 불러주던 그 어느 날이면 친구들이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핫케이크와 양념치킨을 만들어주며 '너네 엄마 진짜 멋지다'라고 탄성을 나오게 하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 먹는 다양한 양식들이 제 인생의 두 번째 '소울푸드'가 되어준 것 같네요.


두 번째 엄마


그 흐름을 뒤이어 만난 제 인생의 '소울푸드'는 전라도 음식의 달인, 우리 어머님이세요. 어머니의 상차림은 w지금까지 제가 경험하며 왔던 상차림과 무언가 달랐습니다.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보다는 나물의 맛 그대로를 끌어올리고, 지금까지 본적 없는 새로운 식재료를 푸짐하게 상에 담아내셨습니다. 깔끔한 서울김치와 달리 입 한가득 젓갈 내음 가득한 김치로 묵히고 묵혀 먹고, 진한 국물의 맛을 만들어주신 어머님의 상은 소가족으로 지내던 제 인생의 전혀 다른 상차림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님의 음식이 최근 제 인생의 세 번째 '소울푸드'입니다.  


이모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소울푸드'는 이모의 김치입니다. 이모는 말 그대로 종갓집 며느리처럼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늘 말하는 레퍼토리 아마 동일할 것 같아요.


'내가 예전에 떡을 얼마큼 썰었냐면~, 예전에 김치를~ , 제사가 일 년에 몇 번~'


그 모든 것들을 감당했던 이모를 돌아보면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떡산적을 만들 때마다 모든 떡과 산적에 들어갈 재료들의 개수와 길이를 똑같이 맞춰내는 이모의 성격을 보면 가끔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모, 이모는 정말 뭘 해도 성공했을 것 같아. 어쩌면 TV 속에 한복 입고 요리 가르쳤을 수도 있어!' 이모는 그중에 김치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모가 그렇게 지긋지긋해하던 김치가 제가 생각하는 이모의 밥상에서 가장 큰 추억이기도 합니다. 김장 이후 한 겨울, 뒷마당 조그만 구석 장독대에 매번 김치를 가지러 나가는 게 이모는 정말 고되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떡 썰기나 제사가 줄어가면서도 김치만은 해 먹어야 한다! 를 고집하시던 시어머니의 마음에 이모는 김장김치가 질리고 질렸을 거예요. 풀무원 김치와 바람난 이모는 이제 김장김치는 누군가 건네 준 고마운 명절 선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깔끔한 김장김치가 제 인생의 '소울푸드'가 되었네요.




글을 마치며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이 있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음식의 추억을 가진 '나'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아, 내가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걸 보면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람을 사랑하고, 추억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오늘은 외할아버지의 평양냉면과 메로구이, 엄마의 함박스테이크, 어머님의 전라도 밥상, 이모의 김치가 생각나는 밤이네요. 갑자기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고민하다보니 아마 이런 음식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답답하고 우울한 내 영혼을 치유하고 싶은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제가 만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요리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나눠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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