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계: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필요한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50년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당혹스러운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한편으로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는 인류가 얼마나 똑똑한지 확증해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변함없는 전 세계적 빈곤은 우리의 정의감에 계속 도전한다. 세계는 점점 더 서로 의존하며 기업 활동의 기회도 풍부하지만, 빈부의 격차는 언제나처럼 크게 벌어져 있다.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목적의식은 거의 없는 물질 사회에서, 우리는 시민이라기보다 소비자로 취급받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로 모두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환경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핵전쟁의 위협은 줄었지만,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 행위, 자살 폭탄, 종교적 이유로 인한 폭력의 재등장 등에 익숙해지고 있다. 가정의 붕괴는 편부모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으며, 공동체의 유대를 위협했고, 많은 경우 젊은이들에게 소외감을 주었다. 우리는 인간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혼란을 겪는데, 이런한 혼란은 낙태와 안락사를 통한 생명의 파괴에서도, 유전공학과 복제를 통해 생명을 창조해 내려는 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왜 이런 세상에 참여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확대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이런 모든 문제와 다른 많은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나 영향을 미친다. 그런 문제들은 우리의 정체성과 목적의식에 도전을 가한다. 그것들은 급속도로 생겨나는 새로운 쟁점들에 대해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도록 도전한다. 다음 장에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하도록 부름받는지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이 세상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은 없으며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위임령만 받았을 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과,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에 대해 떠들썩한 논쟁이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다니사...가르치시며...전파하시며”(마4“:23. 9:35),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신“(행10:38)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복음 전도와 사회적 관심은 교회사 전체에 걸쳐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하며 왜 하는지 규정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않고 두 활동에 관여해 왔다.“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고 그분께 돌이키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그 하나님은 또한 정의를 바라시고 그분의 백성인 우리에게 정의롭게 살 뿐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옹호하라고 명하신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오직 두 가지 태도만 취할 수 있다. 도피 아니면 참여다. (또 다른 태도, 즉 적응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을 세상과 구분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세상에 대해 구별된 태도를 개발할 수 없다. 그냥 세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도피’란 세상을 거부하여 등을 돌리고, 거기서 손을 씻으며(본디오 빌라도처럼, 손을 씻어도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도움을 청하는 세상의 괴로운 부르짖음에 마음을 닫아 버린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참여’란 긍휼의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보고, 세상을 섬기느라 우리의 손이 더러워지고 아프고 상처나게 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누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는 의미다.
너무나 많은 복음주의자가 무책임한 도피주의자였거나, 어쩌면 아직도 그렇다. 교회 안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는 것이, 냉담하고 적대적인 교회 밖에서 서람들을 섬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이따금 적진으로 나아가 기습 공격 식으로 전도한다(그것이 우리 볻음주의자들의 특기다). 하짐나 그러고 나서는 다시 철수하여 성곽 둘레의 해자를 건너 그리스도인들의 성(복음주의자들의 교제라는 안전지대)으로 들어와서는, 해자에 걸쳐 놓은 다리는 치워 버리고 심지어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며 간청해도 귀를 막아 버린다. 우리는 대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고려하면 사회적 행동은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집에 불이 날 텐데, 새 커튼을 달거나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요한 것은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신학으로 양심을 달래려 애쓴다.
작가 존 스토트
현대 기독교 지성을 대표하는 복음주의자이자 저술가이며, 20세가 최고의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케임브지리 리들리 홀에서 목회 수련을 받았으며, 자신의 모교회였던 영국 런던의 올 소울즈 교회 담임 목사로 30여 년간 섬기면서 강력하고 혁신적인 목회 사역을 수행했다. 영국을 비롯한 범세계적인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로서 로잔 연약(1974년)을 입안하였고, 그 후로도 로잔 운동에 적극 몸담아 왔다. 1982년에는 기독교적 신앙과 삶, 선교의 통합을 추구하는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를 세워 초대 소장을 지냈고, 연구소 설립 후 마이클 보겐의 초청으로 올 소울즈 교회에서 “오늘날 영국이 직면한 문제들”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여러 차례 설교는 이 책 “현대 사외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의 토대가 되었다. 또 그가 설립한 랭햄 파트너십 인터내셔널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제3세계 교회 목회자와 리더를 위한 교육과 문서 운동을 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