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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Feb 15. 2024

문제는 태도다.

그리고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아이가 이유식을 할 무렵부터

밥과의 전쟁이 시작 됐던가.

벌써 15년 넘게 먹는 것에 온 정성을 다 해왔나 보다.

그런데 문득, 내 밥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조금 서러워졌고 회사밥이 고마워졌다.



유교 사상에 진심인 시가에서 등골 아프도록 설거지를 하고 친정으로 향하는 명절 아침이 그다지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지 엄마 힘들게, 뭐 하러 와서 빈둥대며 얻어먹고만 간다고 눈치 주고 설거지시키는 아빠도, 당신 며느리는 설거지도 할 줄 몰라서 얻어먹기만 하다가 갔는데도 이쁘다는 엄마도 서운했으니까.

언젠가부터 그렇게 양가를 가는 발걸음이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시가에서 봉사하고 아이 핑계로 그냥 올라오는 일이 많아졌는데, 덕분에 명절에도 설거지 봉사 후 올라와 열심히 밥을 차려 먹어야 하니 더 힘든 것 같다. 이런 게 나이 드는 일인가.



시모가 편찮으셔 요양원에 계시던 때엔 시부 차려드린다고 새벽배송받은 박스 그대로 들고 가서 한 상 차려드리는 날도 몇 번 있었다. 식사 챙겨주어 고맙다는커녕 작은집 가서 전 부치는일 거들지도 않는 며느리라고 손가락질만 받고는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일에 치여 여유가 없던 어느 제삿날엔 음식을 사들고 간 적도 있는데, 몇 번이고 바깥 음식 안 좋아한다며 핀잔을 하셨다. 시모가 계실 때도 며느리 온다고 차려주는 밥상 제대로 얻어먹은 적 없고, 시부 혼자 계시는 집에 먹을 것 없을까 봐 사들고 가도 해드려도 좋은 소리 못 들어서, 나만큼 먹는 일에 공들이는 사람들은 아닌가 보다 하고 정성을 쏟지 않기로 했다.



인정욕구도 버렸겠다, 작은어머니가 음식 준비 하시겠다 해서 명절 당일 아침에 출발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1시간이면 가던 거리를 2시간 만에 도착해서 민망함에 고개 숙이고 서둘러 들어갔다. 지난 명절에 반찬을 몇 가지 해 들고 가봤지만 티도 안 나고 꺼내기도 애매해서 고무장갑과 돈봉투만 들고 갔는데, 눈치 보며 들어간 주방 싱크대 위엔 냄비 하나 없었고, 먼저 도착한 작은어머니와 형님은 제기에 과일과 과자를 담고 있었다. 보이던 눈치는 갑자기 사라졌고 살다 살다 이런 차가운 명절 아침은 또 처음 경험 했다. 먹을 것들을 싸들고 오신 작은어머니가 뒤늦게 도착하고 나서야 할 일이 생겼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작은어머니 음식만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차례상도 차리고 아침밥도 먹는데 어이가 없다. 어른들 떡국 부족한데 더 안 가져오고 뭐 하냐고 소리치시는데, 달갑지 않았다. 작은 어머니 아니었으면 먹지도 못했을 거면서 왕노릇이라니. 사춘기인지 오춘기인지 내 마음은 삐딱하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계속 서서 설거지만 했다. 왜 이 집 사람들은 아침 먹고 과일 먹고 술 먹고 안주 먹고 또 점심까지 먹어야 하며, 안주인도 없는 집에서 도깨비방망이 뚝딱 하듯 음식이 나오길 바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시모가 안 계시니 오래 쓰지 않아 먹기 전 후로 계속 닦아대야 하는 그릇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온다. 허리 펴기도 힘들고 남자들 먹고 남긴 상에 앉아 얼른 먹으라는데, 이 나이에 그러고 싶지도 않아 대충 먹고 빈손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조금 서럽다. 그저 봉사활동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다녀오지만 매번, 문제는 태도다.

고맙다 고생했다 미안하다 한마디면 되는데, 당연하게 여기는 그 태도들이 점점 더 마음을 닫게 만드는 것 같다.



이제 일어나서 아이 점심 도시락 준비하고 출근해야 한다. 또 퇴근하면 저녁밥도 지어 먹여야 한다. 가끔 너무 힘들고 뭘 먹여야 하는지 모르겠는 날엔 사 먹는 날도 있지만,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다행히 내 아이는 나의 노력을 알아주고 마음을 표현해 주니 안 해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따라 나도. 누군가가 차려준 정갈한 밥상이 조금 그립다. 아마도 정이 그리운가 보다.


회사 가서 먹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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