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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May 08. 2016

할머니의 흙

할머니의 흙으로 자란 손주가 이렇게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할머니는 그러니까 정확히는 외할머니는 평생 자기 이름의 논밭 흙 한웅큼 쥐지 못하셨다. 매일 새벽이면 다른 할머니들과 봉고차를 타고 다른 누군가의 밭으로 향하셨다. 그렇게 남의 밭에서 흙 파낸 돈으로 5남매를 키우셨다.


큰아들에게는 항상 많은 걸 못해줘 아쉬어 했다. 그런 큰아들에게는 공장이 많은 도시에 주공아파트를 사줬다.

막내 아들에겐 항상 막내라 많은 것을 못줘 서울에 빌라를 얻어줬다.

첫째 딸에게는 두번의 결혼 비용을 대줬다.

둘째딸은 IMF때 크게 망해 돌아올 곳이 없자 고향 한켠에 자리잡게 도와줬다.

막내딸은 눈에 넣어도 안아플 만큼 아끼셔 스물이 넘어도 품에 안고 계셨다. 막내딸은 좋은 사위에게 보내겠다고 광주에 큰 집을 준비해줬다.

할머니의 흙은 집이 됐고 차가 됐고 혼수가 됐다.


그래도 모든 자식에게 항상 줄 게 없어 미안해 하셨다. 물려줄 땅도 집도 없었기에 남의 밭을 새벽처럼 나가 메셔야 했다. 오남매를 키워 내자 손주들을 도맡아 키워야했다. IMF에 망한 둘째딸의 아들 딸을 키우셨다. 둘째딸네 들은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했다. 소고기 미역국과 굴비 한마리 부족함 없이 할머니는 우리를 먹이셨다. 할머니의 흙은 소고기 한 근 굴미 한 두릅이 됐다.

큰딸이 두번의 결혼이 모두 실패했다. 그의 딸을 맡아서 할머니는 키우셨다. 손녀는 가수가 되고싶어 광주로 학원을 다녔다. 할머니는 또 흙으로 그 돈을 메꿨다.


할머니의 흙은 우리를 모두 키워냈다. 자신이름으로 된 논 한마지기, 밭 한 돼 없으셨다. 욕심이 났을 법한 좋은 집 논과 밭 소 한마리 모두 자식들의 좋은 집, 좋은 차에 투자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흙은 사라졌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모두 대학에 갔지만 아직도 밭일을 나간다. 아직도 돈을 벌어야 할 일이 있는 걸까. 할머니의 흙으로 자란 손주가 이렇게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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