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았다. 시골에 진절머리를 느꼈던 혜원은 도시에 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를 병행하는데, 냉장고에는 썩은 음식 내가 진동하고 한 끼 식사는 늘 때우는 무엇으로 변질된다. 시험에 낙방하고 고향에 돌아온 혜원은 친구에게 "배 고파서 돌아왔다"라고 한다.
나를 위해 한 끼 식사를 준비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며, 요리를 하고, 좋아하는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준비한 식사,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 꼭꼭 씹으며 감사함이 우러나와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한 끼 식사. 그런 식사를 꿈꾸던 혜원은 시골에 돌아와 사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그에 맞는 식재료로 자신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영혼의 허기를 채운다.
영화에서처럼 산수유가 무채색의 산에 밝은 노란빛을 선사하며 봄의 도래를 선언하고 있다. 이렇게 봄이 꽃피고, 햇볕은 따스해지며, 죽은 듯했던 자연이 살아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한 줄기 빛만으로도 암흑은 그 절대성을 잃어버린다. 공부와 사투를 벌이던 내 마음에도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는 소리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데크에서 식사를 하리라 별렀는데, 올해 처음으로 데크에서 나를 위한 음식을 준비해 식사를 했다. 잔디에서 올라오는 쑥은 캐 버렸지만 언덕에서 올라오는 쑥이 남아있다. 혹한을 이기고 수직으로 솟구친 이 강렬한 에너지를 생각하니 자그마한 쑥이 위대해 보인다. 조심조심 캐낸 쑥으로 국을 끓였다.
쑥국과 언덕에서 캔 쑥
채식만두와 채소무침 그리고 쑥국
일부러 짧게 끓여서인지 쑥국의 향기가 강렬하다. 짜지 않게 끓인 쑥국은 채식만두와 채소무침을 곁들여 먹는 중에 한 숟갈씩 떠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콩나물, 양배추, 오이, 달래 등 있는 채소에 양념을 해 만든 채소무침이 아삭아삭 싱싱했다.
햇살은 내리쬐다가 구름 뒤로 숨고, 나는 앞산을 바라보다 데크 위를 기어 다니는 노린재를 바라보았다. 까마귀의 까악거리는 소리,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가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순간이면 그저 한 끼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무언가 온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고 하는데, 이렇게 나는 자연의 소리와 자연의 향기, 자연의 색채를 먹으며 나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