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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달하 May 16. 2024

정리거부력

나의 반려힘

정리거부력은 내 반려힘이다. 지금은 그것을 당당히 힘이라 부르지만 그렇게 부를 수 있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부터 엄마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들었던거보니 정리거부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나보다. 중, 고등학생 때는 거부를 권리로 행사 해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힘 분배를 못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정리까지 할 힘은 없었다. 나는 정리하는데 유독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고 힘은 호랑이처럼 솟아나지 않았으므로 정리에 드는 힘을 아꼈다.

30대 초반 전공의 시절에는 정리할 물건이 없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당직을 서다보니 물건 살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나는 돈을 아끼려고 3년 동안 병원 맨 위층 당직실에서 살았는데 내 집이 아니라는 마음과 병원이라는 공간이 한몫했나 보다. 이 시기에 나를 알던 선, 후배는 내가 정리를 안 하는지 모른다. 이때를 생각하면 공간이란 환경은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니 짐이 많아져, 정리를 안 하고서는 발을 디딜 공간이 없었다. 첫 번째 위기였다. 이런 위기감은 계절이 변하는 시기에 맞춰 왔다. 날씨에 맞는 옷이 보이지 않아 옷을 계속 사다 보니 공간이 모자랐다. 낑낑대며 정리 했다. 몇 년째 계절마다 옷을 한 번씩 넣다뺐다 하는 걸 보면, 절기를 운용하는 자연의 힘 정도돼야 내 정리거부력을 이기나 싶다.

이런 나도 남편이 한 마디 할 때는 내 정리습관을 되돌아본다. 습관이라야 어지르기가 다 여서 쑥쓰럽지만, 아내에게 정리 좀 하라고 한 소리 하게 만드는 것은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염치가 없어서 그가 뭐라고 하기 전 널려있는 옷을 주섬주섬 치우려는데, 역시나 자연의 힘 아니면 오랜 관성을 이기기가 어렵다. 언젠가 한 번은 남편과 같이 친정에 놀러 갔는데 그가 부모님과 동생에게 하소연했다. 달하씨가 정리를 너무 안 해요. 20대 후반까지 나와 함께 산 엄마는 이런 애를 시집보내서 참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가족들 앞에서 하면 어떻게 하냐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되려 역정을 냈다. 내가 그렇게 화를 낸 거 보니 나도 스스로가 부끄러웠나보다.

정리거부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를 일으키면 안 되겠다 싶어 그 길로 청소하는 분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집 근처에 사는 분이 정기적으로 우리 집에 방문해 주시기로 했다. 별 기대없이 구인했는데 웬걸 귀인이 왔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정리거부력이 모셔온 귀인이라며 그녀를 칭찬하듯 나를 칭찬한다.

이모님은 종종 나에게 청소법을 알려주신다. 최근에는 싱크대를 은빛 돌게 닦는 법이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 청소하는 법을 배웠는데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느낀다. 전문가란 연구하고 실험적용하여 타인에게 알려주는 것까지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그녀가 그렇다. 나는 과학수사급으로 진행되는 그녀의 과학청소에 자주 혀를 내두른다. 이모님은 우리가 집을 비웠을 때도 말끔히 청소를 해주시고 간다. 나는 그녀에게 청소를 부탁하며 사람 믿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함께 한지 2년 째. 이모님은 내가 둘째를 임신했던 시기에도 함께 였다. 그녀는 내 부른 배를 보며 애처로워했는데, 요즘에는 둘째 볼 생각에 우리집 방문이 즐겁다 하신다. 나도 기쁘다.

이모님과 함께 하며 나는 사람을 믿는 법에 더해 레버리지의 힘을 알게 되었다. 이모님은 청소를 기가차게 잘하시고 나도 다르게 잘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하는 쪽에 힘을 더 분배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으로 돈을 벌어야지 청소거부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레버리지의 적절한 활용은 강력한 선순환이다.

청소나 정리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유튜브 영상을 종종 보는데 글쎄, 나는 그런 관념에 나를 묶어두기 싫어서 그것을 거부하기로 했다. 청소를 잘하는 성공한 그 사람이 멋지다 생각하며 나는 다른 힘을 키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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