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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May 23. 2024

까꿍력(picabu power)

훔치고 싶은 힘

나와 9개월 차 둘째는 요즘 매일같이 산책을 나간다. 아가는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을 눈으로 좇느라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 그를 본 어른들은 보통 미소를 띠고 지나가는데, 일부는 우리 유모차 앞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나에게 아가를 봐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는 돌연 까꿍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아가를 웃기기 위한 그들의 몸짓이 시작된다! 처음에 나는 그들을 보고 몹시 놀랐다. 다른 사람을 웃기려고 가던 길을 멈추는 적극성과 여유, 웃음을 이끌어내는 기술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하고 말이다. 나는 그들을 ‘까꿍력이 센 사람들’로 분류하는데 그 힘이 약한 나에게, 그들은 늘 탐구대상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멋진힘이 나오는 주머니가 따로 있나보다.


가던 길을 멈추는 이들은 주로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들이다. 이들은 유모차 앞에 서서 다양한 레벨의 까꿍력을 선보인다. 나는 아직 까꿍의 기초단계인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까-꿍’하는 정도인데, 모두가 나보다 한 수 위다. 일단 유모차 앞에 멈춰 섰다는 그 자체부터 넘사벽이라고나 할까. 까꿍초보인 나는 어느날부터 까꿍버스킹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장소는 길거리, 관중은 단 한 명. 아가를 앞에 두고 어른들은 다양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까꿍을 펼친다. 그들은 앞에서 말한 기초 까꿍부터 시작해, 아가 앞에서 뒤 돌았다가 제자리로 휙 돌며 까꿍을 하거나, 다양한 소리를 만트라같이 읊조리며 아가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유모차에서 뒤로 약간 떨어져 섰다가 집게손가락으로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무릎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아가에게 다가서면서,  “뽀롱뽀롱뽀로롱”이라 말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나로서는 그게 될까하는데, 아가는 자지러지게 웃는다.

       

까꿍력은 보통 여성들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남자어른들도 만만치 않다. 중년 남성들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아 엄근진 하게 보일 때가 많은데, 그런 그들의 눈도 볼통통 아가와 마주치면 어느새 맑아진다. 안경을 맞추려고 시력측정의자에 앉았을 때, 안경사가 아주 잘 맞는 도수의 렌즈를 눈앞에 끼워준, 그 순간의 눈이 된다. 그들은 아가를 보고 맑아진 눈을 연신 꿈뻑꿈뻑하며 머리를 도리도리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아가와 그들을 번갈아 보다가, 내가 먼저 웃을 때가 많다. 그런 광경들을 보면 까꿍력은 남녀차이라기보다 개인차라는 생각이 든다. 아가들에게 자주 노출된 사람일수록 까꿍력은 배가 되고, 힘에 흥이 더해진다고 할까. 까꿍력도 후성유전학의 영역, 그러니까 모두가 발현될 유전자는 가지고 있지만 환경에 따라 발현 정도가 조절되는,그런 것 같다. 어쩌면 까꿍력은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힘은 아닐런지. 그렇다면 나도 희망적이다. 나에게도 그 힘이 둘째를 돌보는 지금의 환경에서 좀 더 발현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첫째가 태어나 난생처음 아가에게 까꿍 했을 때, 나는 광대와 얼간이의 중간 어느메쯤 같았다. 다른 사람이 앞에라도 있으면 내 표정은 더 어색해졌다.  내가 까꿍 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을 봤을 때 이게 나인가 싶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하고 싶다는 것은 그를 사랑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마음일 텐데, 그런 표현을 하기가 어찌나 쑥스럽던지. 낯선 나를 만나기 싫어 한동안은 남편에게 나에게는 동영상 공유를 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둘째가 커가는 지금, 축적된 까꿍 동영상을 몰래 보다 보면 나는 이전보다 얼간이 같아 보이진 않는다. 유모차를 멈춰 세우고 까꿍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힘이 조금씩 전달되나보다.


나는 보통 다른 집 아가가 지나가면 힐끗 보고는 못 본 척할 때가 많은데, 요즘은 모르는 아가들을 지나치며 까꿍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아직 시도해보진 못했다) 어찌 보면 까꿍력은 자기 표현력의 범주, 그중 사랑을 표현하는 영역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보면 나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훈련해가는 단계인가 보다. 아가 앞에서 마음껏 까꿍을 하다 보면 나를 드러내는 힘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기도. 오늘도 까꿍버스킹으로 아가와 나를 웃기고 자신도 함께 웃는 그들을 관찰하며, 나만의 버스킹 타임을 꿈꾼다.    


대문사진 출처 : 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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