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순이의 변(辯)
사과력이 미안함을 잘 전달하는 방법이나 미국기업 애플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예상하셨을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드리자면, 나는 미안한 일을 하면 각자가 느낀 감정만큼 현재에 계속 쌓인다고 생각하므로, 죄송한 일은 가능한 만들지 않으려고 '노오력'하는 편이다. 애플기업과 관련해서는 그 회사의 주식을 몇 주 가지고 있는데, 몇 년 전 미국 1등 주식을 사라는 친구의 말에 솔깃 넘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 사둘 걸. 애플은 개미 주주인 나에게도 몇 달러씩 배당금을 건넴으로써 사과를 먹을 때마다 그들을 떠오르게 한다. 애플사와의 인연은 이 정도.
뼈부터 사과순이라 칭하기 무색하게, 나는 작년 말이 되어서야 사과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 과일이 나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쌀과 양대산맥으로 여태껏 내 식량창고를 채워왔건만, 냉장고 칸이 텅 비어서야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30년이 지나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엄마란 사람'에 대해 처음 생각해 봤던 것처럼. 마트에서 비싸진 사과를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이의 체력을 빼러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사과나 사볼까 하는 마음으로 과일칸을 둘러보았다. 사과 6개들이 봉지가 30000원. 일십백천만. 가격을 거꾸로 세어 6으로 몇 번을 나눠보았다. 5000원. 사과가 한 알에 5000원이라고?! 그간 사과는 가격도 보지 않고 샀던 터라 가격표의 숫자를 자꾸 세었다. 일십백천만.
가격을 보니 사과가 낯설어졌다. 미안하게도 '몸값이 비싸져서 당신이 다르게 보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판이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사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온라인마켓들도 가격은 비슷했다. 사과라는 검색어에 연달아 나온 대다수의 기사들도 '사과값 고공행진'을 다루고 있었다. 사과값이 오른 이유로 생산은 줄었든 데 반해, 부대비용은 는 것이 주요하게 거론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39만 4428t으로 2022년(56만 6041t)보다 30.3% 줄었다. 지난해 생육기 집중호우와 탄저병이 겹친 데 따른 결과였다고. 그에 반해 사과 저장과 유통을 위해 부대적으로 드는 판관비(전기세, 인건비 등)는 올랐으므로 소비자가가 크게 오르게 됐다. 기사들을 보며 사과는 수입 없이 내수로만 충당한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사과가 나에게 오는 경로는 '온라인 접속 -검색과 결제 - 배달' 이렇게 세 단계인데 그 사이 생산과 유통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스스로를 사과순이라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먹기만 잘하는 반쪽 순이 같았다.
그 이후로 조금씩 사다 놓은 사과는 첫째 아이 차지가 되었다. 첫째도 나처럼 사과를 제일 좋아하는 과일로 꼽는다. 그가 비싸지 않은 '국민과일'을 유난히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바나나를 제일 좋아해 보는 게 어떤지 자꾸 권하게 된다.
사과값이 언제 떨어지려나, 조생종은 언제 나오려나 기사들을 살펴본다. 올해 8월 아오리 같은 조생종이 나올 때까지 가격은 계속 비쌀 것이란 전망에 시무룩해진다. 그마저도 공급시장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고. '수입하면 안 되나.'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이어지는 기사에 생각을 다문다. 나 같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과값이 오르면 얼른 떨어지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입장차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과수입처럼 당장의 공급을 늘릴 방법을 모색하자는 의견들도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볼 것이었다. 기사를 찾아보고 여러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읽으니 '사과값이 비싸니 어떻게든 내려야지'라고 단편적으로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덕분에 이전에는 비싸게만 느껴졌던 세 팩에 만 원짜리 블루베리도 사 먹어 본다. 비싸진 사과도 색다른 기분으로 즐기면서 사과가격에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매일 먹지 못해도 사과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면 사과순이의 명맥은 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매일 아침 먹는다는 것이 실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과순이가 매일 아침 사과를 먹는 리츄얼을 다시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이제는 아이에게만 시키지 말고 나도 말해야겠다. '농부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 사과를 재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과를 보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라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사과를 사려고 돈을 벌러 가고 사과를 그리워하며 사과가 주는 힘을 세포단위로 느끼는, 나에게도 감사합니다(씽긋)
참고기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306505825
대문 사진: Unsplash의 Marek Studz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