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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l 12. 2024

척력

척하는 삶

학창 시절 나는 그들을 유난히 싫어했다. 공부 안 한 척, 시험일정에 무심한 척하는 친구들. 그들은 공부도 안하고 시험일정에도 무심한 듯 보였지만, 성적은 늘 나보다 좋았다. 100만큼 공부를 한 친구가 단어를 못 외웠다고 울먹거릴 때, 50만큼 공부를 한 나는 그들을 달래며 초콜릿을 건넸다. 성적표를 받아 든 날에도, 그들은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며 또 울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초콜릿 사기를 멈췄다.

      

몇 차례 그런 사람들을 겪고서, 나는 그들에게 엄살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나름의 대응을 시작했다. 그들이 울먹거릴 땐, ‘그래 그랬구나.’하는 최대한의 무미건조함을 담아서 말을 건넸다. 그런 친구들 중 엄살만 빼면 장점이 많은 친구도 있었다. 그런 아이 하나와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놀며 지내다 보니, 그녀가 '-한 척'하는 이유는 거의 다가 두려워서였다. 시험을 앞에 두고는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시험공부를 못한 것, 그것은 그녀에겐 확실한 진실이었다.


그녀에게는 확실하고 나에게는 상대적인 진실. 그것이 그녀에게 두려움을 몰고 왔다. 나는 그 두려움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으로 왈가불가하는 일은 늘 제로섬게임이었다. 내 편에서 감정을 소모하며 마이너스게임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무미건조해야 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최대한의 방어였다.

     

친구의 두려움은 늘 불안을 끌고 다녔고 그녀는 자주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에는 무미건조하기 싫었지만, 그것을 보듬을 여력은 없었다. 나에게는 '그래도 너는 나보다 성적이 좋잖아.'라고 볼멘소리를 할 재주도 없었고,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한척할 수 있는 성미도 못 되었다.      


10년이 지나 우리는 30대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꾸렸다. 얼굴은 못 본 지 오래되었고 친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체창을 통해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 친구는 5년 전쯤, 단체 카톡창에 아이를 갖기 위해 시험관시술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관련된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가 어떠한 척이라도 하며 메신저에 글을 올려주길 바랐지만, 채팅창은 조용했다. 나는 무언의 메시지로 가득 찬 공백을 둘째 임신소식으로 깰 깜냥이 되지 않았다. 둘째 출산일이 되어서야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메신저 프로필로 아이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올린 메시지에 그녀가 축하를 건네며 말했다.  


자기는 "임신이 안되어서 불임에 대해 공부를 하다 하다, 불임클리닉 진료까지 하게 되었다"라고.  카톡 메시지에서 그녀는 아무런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만을 전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임신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 정도 짐작할 뿐이다. 짐작으로 서툰 위로를 하기보다 나는 침묵을 택한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 조용히 입을 다문다. 그날도 나는 그녀의 말에, "고생이 많았다"는 대답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삶의 어떤 주제는 입에 올리기도 버겁다는 것이 느껴질 때, 나는 더 자주 입을 다문다.  보통 그런 주제들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일 때가 많다. 임신과 출산, 병듦과 죽음 같은. 그런것들 앞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 '-한 척' 하며 바깥으로 돌던 말들이 내면을 향하고 그것들과 마주했을 때, ‘어떠한 척도 필요 없고 또 소용이 없음’을 불현듯 알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요즘에는 척하던 그녀가 그립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느끼는 삶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므로.


그녀를 떠올리며 '-한 척'하는 사람들을 다시 바라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봇짐 지고 가는 사람들끼리 짐이 가벼운 척, 콧노래가 나오는 척하는 것도 좋겠단 마음이 일었다.



대문 사진: UnsplashJavar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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