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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크랜디아 Jun 11. 2022

요세미티의 무지갯빛 길을 보여줄래

Yosemite National Park, California


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고 싶다.” 하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게끔  하는 곳이 종종 있다. 네팔의 안나푸르나가 그랬고, 태국의 꼬따오가 그랬다.

그리고 미국의 국립공원 중에서는 요세미티가 그런 곳이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인구도 많고, 관광객도 많은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 서부 여행 중 그랜드 캐년을 봤다면, 그다음으로 볼만한 국립공원쯤으로 꽤나 인기가 있다.

그렇지만 그랜드캐년과 같은 처음 보는 풍광을 기대하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한국산에 흔히 보이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은 산들, 한국산에서 사시사철 보아는 소나무 전나무 상록수들이 어우러진 경치는 충분히 아름답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딱히 이국적이지도, 임팩트 있지도 않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공원들은 한눈에 와! 하는 경이로운 감탄을 자아내는 곳들도 있지만(그랜드캐년, 크레이터 레이크, 세콰이어 국립공원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천천히 둘러보았을 때라야 그 아름다움을 슬며시 열어 보여주는 곳도 있다.

요세미티는 당연히 후자에 가까운 곳이다.  



해밀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2016년 여름의 초입이었다. 친구와 미서부 로드트립을 하면서 요세미티를 일정에 넣고 요세미티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숙소에 묵을 때 (요세미티는 국립공원 내 숙소가 적고, 비싸고, 시즌에는 예약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라서 주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전날 자고 일찍 출발하는 일정을 택한다) 우연히 그날 요세미티를 보고 온 한국 여행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저녁밥 때가 한참 지난 시간이었고, 그들은 요세미티를 찍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영접하게 될 요세미티를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요세미티 어땠어요?"

 돌아온 대답은 약간의 어색한 미소와 “뭐, 한번 가보세요.”였다.

행간을 읽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해석한 그 말의 뜻은 “ 거기 가봤더니 별거 없다만 당신의 기대를 솔직한 한마디로 망치고 싶지 않으니 직접 가서 실망해봐라”쯤으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왜 그들이 그렇게 얘기했는지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곳은 첫눈에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오는 곳이 아니었다. 내 두 발로 땀 흘리며 산속 깊이 언덕 높이 올라가야만 그 속에 꽁꽁 숨겨놓은 숨 막히는 절경을 내어놓는다. 돈은 있지만 시간에 쫓기는 투어리스트들을 위한 헬기투어 따위는 없다. 시간은 있지만 힘들이기는 싫은 사람들을 위한 노새 투어도 없다.  오로지 정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와!”하는 감탄을 뱉어낼 자격이 주어진다.

바쁜 일정에 쫓겨 요세미티에서는 간신히 서너 시간 머물 수 있었다는 그들은 안타깝게도 요세미티의 속살을 미처 만나지 못한 채 겉모습만 보고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누군가가 나에게 요세미티가 어땠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꼭 한번 가보세요. 적어도 온전한 하루를 그곳에서 머물 수 있다면요!”


요세미티는 하이커들의 성지이고, 락 클라이머의 꿈의 장소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 중 하나인 John Muir traild을 비롯해 수십 개의 산과 물을 건너는 트레일들이 곳곳에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노스페이스의 마크로도 유명한 암벽, 하프돔을 비롯해 el capitan과 같은 보기만 해도 그 존재감에 압도당하는 암벽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에게 얼마 큼의 시간이 있냐, 반나절? 하루? 아니면 이틀? 일주일? 그리고 누구와 함께 가는가, 20대 젊은이 둘? 아이가 있는 가족? 오붓한 노부부?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알맞은 트레일을 선택할 수 있다.

미리 찾아보고 가기도 하지만, 비지터 센터에서 상담받는 것만큼 빠르고 편한 방법은 없다. 요세미티의 경우 비지터 센터에 주차를 하고 셔틀을 타고 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일방통행로가 있는 이 깊은 산속 마을에는 엄청난 교통체증이 있다) 비지터 센터를 들렸다.

하체가 꽤나 튼실한 젊은 여자 둘, 시간은 오늘 하루 해질 때까지라고 얘기하니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트레일을 한번 가보라고 얘기한다.

"You should see Mist Trail"

요세미티의 유명한 폭포인 lower yosemite falls과 Upper yosemite falls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트레일로, 폭포에 가까이 가면 폭포물이 미스트처럼 날려 붙여진 이름이란다.

넉넉한 나무 그늘 아래 산 넘고 물 넘는 초반의 코스는 고되기보다는 소풍 같았다. 오르막은 계속되었지만 한국산에 비한다면 그 경사는 귀여운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스 중반에 접어들자 길은 좁아지고 점점 가파러졌다. 옆으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좁아진 길은 올라가는 사람 한 줄, 내려가는 사람 한 줄 서기를 잘 지켜야만 흐름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여서 힘들다고 중간에 멈추기도 쉽지 않았다. 헉헉거리며 개미처럼 한 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이게 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상기된 표정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내려오는 반대편 줄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엄청난 준비 정신으로 수영복을 입은 채 물놀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으로 웃으며 내려오는 아이들 사이로 이 길에 어울리지 않는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아기가 있으면 오기 어려운 코스인데..’라는 생각도 잠시 어린 아기를 배낭처럼 생긴 하이킹 캐리어에 업고  좁고 가파른 길을 내려오고 있는 젊은 부부의 얼굴이 다가왔다. 힘든 기색보다는 행복한 기운이 얼굴에 가득했다. 혼자서도 힘든  길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그들의 마음에, 그리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그들의 체력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힘차게 낙하하는 소리로만 그 존재를 드러낼 뿐 한참을 보이지 않던 폭포는 마지막 코너를 하나 돌자 그 존재를 촉각을 통해 전달하기 시작했다.

흩뿌려진 미스트들은 뺨을 머리칼을 팔등을 적셨지만 아직 폭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렁찬 소리로, 촉촉한 감촉으로   있었다.

We are almost there.


Yosemite Lower Falls


코너를 한번  돌자 Yosemite Lower Falls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무지개가 폭포로 가는 길을 둘러싸고 있었다.  길은 미스트 트레일이 아니라 레인보우 트레일이란 이름을 가졌어야 했다. 폭포의 가장 낮은 곳부터 높은 곳까지 어느 곳에  미스트와 햇볕이 창조해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오색찬란함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났다. 집에 두고  남편에게  길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중에  아이를 업고  무지갯빛 길을 걷고 싶어졌다.


그리고 3년 뒤 다시 여름이 돌아왔다 갓 돌이 지난 해밀과 하이킹 캐리어도 함께, 그곳으로 떠났다.

요세미티는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여전히 푸르렀고 생명력이 넘쳤고, 입구의 교통체증도 여전했다. 단지 변한 것은 미스트 트레일의 체감 난이도였다.  

3년 전에 걸을 때는 분명히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소풍 같았던 초, 중반 코스부터 난관이었다. 출산, 육아를 거치며 좀 더 늙고 근육이 빠진 나의 체력 때문인 건지, 장시간의 운전 때문인 건지, 한 쉬도 쉴 틈을 주지 않는 하이킹 캐리어 위의 상전 때문인 건지 분명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가는 길은 소풍이 아니라 흡사 행군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이킹 캐리어를 매고 시작했던 남편은 5분이 지나자 점점 말이 없어지고, 10분이 지나자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여기 너무 오르막길이다 어떻게 끝까지 올라가냐며 잔뜩 예민해진  남편에게 조용히 하이킹 캐리어를 뺏다시피 하여 그 짐을 나눠지기 시작했다. 5분, 10분이 지나자 말이 없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쉬어야만 하는 한계에 이르를 즈음 남편이 다시금  조용히 하이킹 캐리어를 넘겨받았다.  

3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쉬었고, 그래서 훨씬 더 더뎠고, 하이킹의 모든 과정을 "우와~~" 하는 감탄으로 채울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 캐리어와 아이를 내려놓고 쉬는 동안 조용히 경치를 즐겼고, 느리지만 계속 걸어갔다. 드디어 코너를 돌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미스트가 뺨을 때린다.

“내가 그랬지! 여기 수영한 것처럼 젖는다고!!” 내 말을 믿지 않았던 남편에게 자랑하듯이 신나게 떠벌린다. 그리고 하이킹 캐리어 속 한 살 아기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물공격에 다소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으니 놀랐지만, 무섭지는 않은 것이라고 여기며 안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여기를 돌면 무지개랑 폭포랑 같이 있다고오오!!” 돌이켜보니 최악의 스포일러가 따로 없지만 폭포 소리 때문에 조금 큰 소리를 낸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마지막 코너를 돌자, 무지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3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고 내가 돌아올 거란 약속을 믿으며 기다려준 것처럼 더욱 세찬 미스트와 함께(수영복을 입고 올걸 그랬다) 우릴 반겨주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다 좋은 줄만 알았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훌륭한 음식을 먹는 것, 이국적인 여행지에서 황홀한 선셋을 보는 것, 영감을 주는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회를 가는 것, 이 모든 좋은 것들을 할 때는 그냥 다 좋기만 하고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우리가 이렇게 숨 막히는 자연을 영접하는 것 또한  기쁨과 감탄으로만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등에 업힌 우량한 1살 아기라는 변수는 기쁨과 감탄을 노동과 개탄으로 희석시킨다.

오늘도 ‘좋아하는 것을 할 때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구나’를 받아들인다.  

“완전” “완벽하게” “최고로” 좋았어!라는 수식어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대체적으로” “전반적으로” “꽤나” 좋았어! 를 목표로 삼는다. 그러려면 기쁨과 감탄의 비율이 고생과 고난보다 단 1%라도 더 높아야 하고, 그 지점을 차지하지 위해서는, 길 위의 짐을 나눠져야 한다.

 몸무게의 두배쯤 되는 남편이 아이를 업는  얼핏 보기에 합당해 보일지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 그가 너무 지치기 전에 내가  하이킹 캐리어를 져야 한다. 그래서 어느  사람의 희생으로 다른  기쁨과 즐거움과 편안함을 만들어내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척하는 기형적이고 가학적인 체제를 거부해야 한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따스한 햇살 아래 나의 모든 감각을 두드리는 물방울을 맞으며 이 길 위의 사시사철 영롱한 무지개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비가 그친 뒤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는 찰나의 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만사는 무지개가 섰다 사라지듯이 아름다운 공허였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스트트레일의 무지개는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축축하게 온 몸이 젖어도, 돌길이 미끄러워져도 그 길을 걸어가기면 하면 언제나 그 길에 함께 하는 아름다운 영원이 된다.  


무지갯빛 길을 만나고 흠뻑 젖은 채 내려오는 길의 우리의 표정은 3년 전 아이를 업고 이 길을 내려오던 그 부부처럼 해사했던 것 같다. 그제서야 그 부부가 미소가, 아이를 업고도 즐겁게 하이킹 할 수 있는 강철체력 때문만은 아니였겠구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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