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미니멀라이프
약 8개월 전 타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고향은 아니지만 30년을 살던 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이사오기란 여간 용기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이사를 해야 해서 이만저만 긴장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큰 아이는 초등 고학년이라 더 신경이 바짝 쓰였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했으면 그나마 좋으련만, 이사 가야 하는 지역의 집값이 더 높은 까닭에 우리는 평수를 줄여야 했다. 34평 신축에서 25평 구축으로.
걱정을 한가득 안고 왔고, 작은 집에 적응하는데도 꽤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집을 줄여오니 좋은 점들이 보인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집안일이 반의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30평대 집을 청소하려면 못해도 한 시간, 신경을 좀 더 쓰면 두 시간도 걸렸다. 그러나 이사 온 집에서는 30분이면 끝이다. 더 하려야 할 것도 없다. 청소기 돌리는 시간도 5분이면 족하다. 화장실도 하나밖에 없어서 청소도 남편과 번갈아가며 하니 한 달에 한 번만 하면 된다.
두 번째는 짐이 정말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사오기 전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것저것 짐들을 정리했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사 오고 나니 택도 없었다. 짐 정리는 커녕 집 안에 겨우겨우 쑤셔 넣고 이사가 마무리되어버렸다.
이사 오기 전에는 그래도 놔둘 공간이 있었으니 필요하지 않더라도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과감히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사 후에는 정말 필요한 것들도 놔둘 자리가 없었다. 필요 없는 물건은 더 이상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 중에서도 없어도 될 법한 것들은 다 정리했다.
그중 TV와 TV장도 정리가 되었다. 순전히 놓을 공간이 없어서였지만 TV가 사라지고 나니 내심 좋았다. 그동안 TV 없는 집을 꿈꿔왔는데 막상 멀쩡한 TV를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명분이 생겼다. 마침 친정 TV가 망가져 우리 집 TV를 보내드렸다.
아이들 교구와 보드게임도 한가득이었는데 다 정리가 되었다. 항상 마음을 불편하게 했었던 것들이다. 어느 순간 해주지도 않으면서 죄책감만 쌓이는 물건이 되었다. 언젠가는 하겠지.. 라며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참에 필요한 분들께 싹 다 보내드렸다.
마지막으로는 쟁이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쟁여도 놓을 공간이 없다 보니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사게 되었고 물건을 살 때도 꼭 필요한 것인가를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되었다.
언젠간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하며 이사를 왔는데 막상 살아보니 좋은 점이 많아 그냥 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자발적인 미니멀라이프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