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경험이 무엇보다 귀중한 시대다. 경험 마케팅(experience marketing)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경험은 이미 마케팅의 한 범주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블로그 후기부터 앱의 별점 평가, 리뷰 텍스트까지 다양한 '경험'을 기준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평가한다. 심지어 제품 후기를 텍스트 분석하여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사업까지 등장했으니 경험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경험을 중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험'이 제품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증가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경험이 주는 효과를 경험한 적이 있다. 최근 코딩과 관련된 수강 후기를 접했는데, 비전공자 수강생이 처음에는 부족했지만 수업을 통해 성공했다는 대서사시를 담고 있었다. 같은 취준생으로써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속으로 얼마나 축하해줬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수업 링크-당연히 유료였다-를 보고 느낀 허탈함이란! 알고 보니 수강 후기라기보단 광고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하지만 이내 그것보다는 서비스 소개까지 거부감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담이 가진 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째서 '경험'을 더 신뢰하는 걸까? 경험이 대상에 호감을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분해하는 사람들로, 어떻게 경험이 구매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왔다. 경험이 제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능성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내 것'이라고 느끼면 시선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심리학은 '내 것'이라는 마음을 심리적 소유(psychological ownership)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심리적 소유란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 대상의 일부를 자신의 일부로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대상에 대해 심리적 소유를 느끼면 지불하려는 가격이나 구매 의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심리적 소유를 느끼게 만들지 고민해왔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 패러다임이 사용되어 왔다. 아이디어 노트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하게 만든다던가, 이름이 적힌 가상의 장바구니에 대상(예컨대 작은 공)을 옮긴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하면서도 많이 사용된 방법은 대상을 접촉(touch)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 또한 높다.
당신이 공예품 매장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성스럽게 디자인된 컵과 다기, 수저 등 많은 작품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컵을 들어보기도 하고, 펜을 종이에 써보기도 하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것이다. 곧 그 물건은 점원을 거쳐 당신의 손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험해보는' 순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소량 생산되는 상품이므로 '눈으로만 살펴봐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다고 해보자. 물건을 살 확률은 어떻게 변하겠는가? 일반인에게 묻는다면 분명 아이쇼핑만 하고 나올 것이라고 대답이 증가할 것이다.
이처럼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율을 결정하는 것 중 하나는 접촉 경험이다. 접촉 경험의 효과는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연구에서는 대상에 대해 겨우 30초만 접촉하게 하였음에도 구매 의도가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효과는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적용하고 있다. 백화점에 들어가면 있는 시식 코너가 대표적인 예이다. 음식의 가격이나 영양보다 시식으로 구매를 결정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손길을 기다리는 컴퓨터나 마우스들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당신의 체험이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경험만이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비실체적인 대상에 대한 경험도 구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컵이나 펜이야 만질 수 있다고 쳐도, 여행이나 영화 같은 것들은 만질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비실체적인 경험 역시 구매 의도나 만족감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갖는 '속성' 때문이다.
물질적 대상은 한계 효용의 법칙이 적용된다. 같은 대상을 통한 만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기 마련이라,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것을 원한다. 처음 전세집을 구하면 오피스텔로, 오피스텔을 구하면 역세권으로 점차 욕심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이처럼 물질을 통해 만족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차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비실체적인 '경험'은 이 중독적인 고통에서 자유롭다. 비교라는 렌즈를 거치는 물질적 대상과 다른 방식으로 만족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험적 구매에 대한 연구자 중 한 명인 길로비치는 비실체적 경험이 만족감을 주는 이유를 사회적 비교로 설명하였다. 즉, 사회적 비교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비실체적 경험의 가치는 대개 주관적이다. 내가 가진 컵은 다른 컵과 좋은지 나쁜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지만, 내 여행과 당신의 여행의 값어치를 따지는데는 셈법이 복잡해진다. 대체 무엇으로 서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돌아다닌 관광지의 개수? 페북에 올린 사진이 받은 좋아요의 숫자?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경험은 사회적 관계를 촉진한다는 또다른 장점이 있다. 서로 비교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하기도 쉽다. 이들은 대화의 소재가 되며, 사회적 관계를 돈독히 만듦으로써 만족감을 한 번 더 증가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친구와 카페에서 모여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떠올려본다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만 사촌이 여행을 다녀오면, 배는 그냥 말짱할 뿐이다.
문득 우리는 '경험'이라는 도구로 세상을 즐기도록 설계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삶은 밋밋하고 공허하니까 말이다. 어차피 평생 무언가를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면, 내가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경험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많은 연구자들이 경험을 파고드는 이유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