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장 Nov 08. 2023

나의 공간, 너의 공간

건축가의 글;집



나: “여긴 거실이고 이쪽이 주방이야. 식탁에 앉으면 저 멀리 산이 보이는 거지.”

너: “좋다. 여긴 뭐야?”

나: “응, 거긴 우리 작업실이야.”

너: “니 작업실 얘기하는 거지? 내 작업실은?”

너: “일단 같이 쓰자.”

나: “싫어. 나는 ‘내’ 작업실로 만들어줘. 독립된 공간으로.”

너: “아..”


사실 아내와는 작업실로 계속 투닥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늘 작업공간이 있었고(독립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아내는 없었던 것 같다. 이전 집은 원룸과 마찬가지인 공간이었고 아내의 책상이 있기는 했지만 독립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아내는 본인의 모니터가 보이는 걸 극도로 꺼려했었기 때문에 집의 제일 구석에 책상을 놓았다. 내 작업공간은 아내의 책상 앞에 배치되어서 마치 부장과 직원의 책상 배치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직원 자리에 앉은 내가 언제든 부장 자리를 염탐할 수 있다는 것으로 늘 불만족해했다.


그녀의 불만이 쌓일 즈음이면 나도 불만을 터트렸다.


나: “니 공간만 없는 게 아니라 내 공간도 없어.”

너: “그러니까 내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예전에 그녀가 쓴 에세이가 하나 있었는데, 제목이 ‘엄마의 방’이었던 것 같다.

자식들이 장성하고 다들 본인들 살길을 찾아가고 나서야 ‘엄마만의 공간’이 생겨났다는 얘기.

일평생 처음 본인의 공간을 가진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니 처음 차를 사고 가장 좋았던 것이 비 오는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빗소리와 라디오 소리만 들리는 작은 공간에 나 홀로 있는 것.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나와 아내가 사는 아파트는 방이 3개인 집이다.

하나는 부부 침실로, 하나는 아이방으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서재로 쓰고 있다. 서재는 여전히 아내의 책상과 나의 책상이 함께 있어 각자의 독립된 공간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새로 짓는 집에는 꼭 각자의 작업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작더라도 나의 방, 그녀의 방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