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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Nov 09. 2023

건축가가 '나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집을 지으려는 결심


나는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다.


프로젝트별로 돌아가는 업의 특성상 6개월 뒤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주기적으로 수주에 대한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는 늘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늘 부정의 끝에 주저앉은 생각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삶의 끝은 '죽음'이어서 우리 모두는 '비극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처럼, 답이 없는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 속에 답답한 마음만 가득한 그 상태 말이다. 여전히 한 두 달에 한 번쯤은 겪는, 그래서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 마음의 일부 같은 것.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이 일을 시작했으니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내 집은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이것은 아마 일종의 '오기' 혹은 '시험' 같은 것인데, 건축사 시험을 준비할 때는 '내가 건축사만 따면 그만둔다'거나, 고생스러운 프로젝트의 끝에서는 '내가 이것만 하고 다시는 하나 봐라'는 것과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답이 없는 질문만 하고 있으니 나름의 '답(목표)'을 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냈나 싶다가도 그래도 집을 짓는 결심이 나에게, 또 가족에게도 필요한 일이겠거니 주문을 외우며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보았다.



1. 집이 생긴다. 인생의 절반쯤 살았으니 이제는 우리 집을 가질 때가 된 것 같다.


2. 직업인으로서 클라이언트의 어려움을 미리 겪어 본다. 의외로 과정 전체를 경험해 본 건축가는 드물다.


3. 설계만 하다 보니 실제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4. 나의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 또 아내의 작업실을 만들 것이다.


5. 주말에는 햇살 좋은 곳에서 선베드를 깔고 누워있고 다.



아이가 시골에서 자랐으면 한다거나 다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대부분의 이유는 그냥 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집이 가지고 싶어서, 건축의 전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한 번 겪어보고 싶어서, 좋은 집을 그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살아보고 싶어서, 내(아내) 작업실이 가지고 싶어서, 또 햇살 좋은 곳에서 선베드를 깔고 누워있고 싶어서 집을 짓고 싶은 것처럼.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인생의 큰 결정 중에 하나인 일이 생각 외로 단순한 이유들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이 대부분 좋아서, 또는 해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나름대로 큰 결정의 두려움 속에 위안을 얻는 것은, 그래도 이것이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보자며 북돋아준 아내에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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