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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Sep 25. 2021

하마터면 이모가 조카와 놀아주는 줄 착각할 뻔 했다.

165일째, 서른

 공기 중에 먼지처럼 중구난방 떠다니는 생각을 가라앉히는데 좋은 방법은 종이접기다. 얼마 전 심신의 안녕을 위해 종이접기로 햄버거 세트를 만들었다. 햄버거는 물론이거니와 감자튀김, 콜라, 받침대를 접었는데, 콜라에 빨대까지 만드는 디테일로 완성하니 제법 그럴싸했다. 조화로운 한 세트처럼 어지러운 생각도 각 자리에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종이접기는 심심한 게 제일 괴로운 5살짜리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으로도 쏠쏠하다. 사랑스러움과 미움이 겸비한 나의 5살 조카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아이는 고 반짝이는 눈으로 잔뜩 기대하며 나를 본다. 아이는 이모가 입을 달싹일 때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신나고 새로운 놀이가 나오는 줄 안다. 그리고 이모는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도깨비방망이 환상을 지켜주고 싶다. 

 “우리 아주 작은 감자튀김과 콜라를 만들자!”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면 놀이는 시작된다. 색종이 색깔을 선택하는 게 첫 단추인데 편견 없는 아이는 가차 없이 연두색/ 초록색 양면 색종이를 짚는다. 멈칫, 잠시 옆에 있는 노란색 색종이로 하자고 할까 하는 말을 삼킨다. 환상의 네버랜드에 가기에는 너무 커버린 이모는 감자는 노란색 아니면 뽀얀 색, 이 두 가지 밖에 모른다. 아이가 고른 색깔을 보고 ‘암, 풋감자나 녹차 먹은 감자일 수 있지’ 하고 그 짧은 시간에도 현실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13*13(cm) 색종이를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접어 생긴 접기선대로 자르면 6.5*6.5(cm)짜리 종이가 4개 생긴다. 혼자라면 무리 없이 슥슥 접고 자르면 그만이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선생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5살짜리 아이라면 교수법의 난이도가 더욱 솟구친다. 5살짜리의 언어로 통역을 해야 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색종이를 큰 오차 없이 딱 맞춰 접어야 하는데 이것을 아이에게 설명할 내 언어 데이터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봐봐~ 이렇게, 딱 맞춰서 하는 거야.” 시각 정보 전달에 의존할 수밖에.  

“뽀뽀하게요?” 

 마주 접는 걸 뽀뽀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말에 무릎을 탁 친다. 그래, 뽀뽀하게! 하마터면 이모가 조카와 놀아주는 줄 착각할 뻔 했다. 

'우리, 같이 협동 놀이를 하고 있었구나'  

선생, 리더, 어른의 완장을 내려놓고 나니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삐뚤빼뚤하면 삐뚤빼뚤한 대로, 자르다 종이 허리가 오목하게 파여도 파인대로 둔다. 그대로 둔다. 자기주장 강한 길죽한 감자튀김이 둘, 셋 생긴다. 내 종이 접으랴 조카의 종이 보랴 이경규 아저씨가 하는 띠용 눈알 개인기처럼 눈이 바쁘게 좌우로 움직인다. 이윽고 감자튀김 용기, 콜라와 빨대 접기도 완성되었다. 용기에 감자튀김 하나하나 담고 마지막으로 콜라에 빨대 꽂는 게 화룡점정이다. 그리고 이 놀이의 별미는 역시 식도락이다.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방금 담았던 감자튀김을 하나씩 쇽쇽 꺼내 옴뇸뇸 소리 내면서 먹는 시늉을 한다. 이모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감자튀김은 조카에게 양보하고 엄지만 한 콜라 한 모금 마신다. 크~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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