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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환 Jul 12. 2022

남극 세종기지 역대 최고기온, 13.9도 기록하다.  

남극에서 알려드립니다 (5) - 남극과 기후변화 1

  '올여름 역대급 찜통더위'. 한국인이라면 매년 6~8월쯤 접하는 익숙한 제목의 기사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역대급 더위의 여름을 준비하라는 소식을 머나먼 남극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여름은 장마마저 일찍 찾아와 후덥지근하고 끈적한, 그야말로 한증막 더위가 찾아왔다고 들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더위 속에서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찜통더위는 한국의 얘기만은 아니다. 이곳 남극 세종기지도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남반구에 위치한 남극은 한국과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현재 한겨울이다. 올해 초, 그러니까 남극의 한여름인 2월에 세종기지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기온인 '13.9도'를 기록했다.

세종기지 관측이래 최고기온인 13.9도를 기록한 날. 12.9도일 때 촬영했는데 이때까지는 역대 2번째 최고 기온이었다. 촬영 이후로 온도가 더 올라가서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13.9도'. 절대적으로 추운 기온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봄가을에 느낄 수 있는 쌀쌀하고 외출하기 좋은 온도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기지에 있었지만 덥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바람이 태풍급으로 강하게 불어서 평소보다 서늘하다고 느꼈다. 나중에 기상대원으로부터 최고기온을 기록했다는 전해듣고 나서 '오늘이 가장 더운 날이구나' 인지했다.

  사실 남극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대륙이다. 남극점의 온난화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3배 빠르며 특히 21세기 들어 그 속도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남극점 근처에 위치한 아문센-스콧 기지의 관측자료에 따르면, 남극점의 경우 21세기에만 평균기온이 1.8도가 상승했다. 이는 지구 평균인 0.6도보다 3배나 높은 수준이다. 원래 남극 기후는 추워졌다가 더워지는 진동을 반복했는데 최근 들어서 기온이 점차 상승하는 우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극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대륙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이례적으로 높은 기온을 기록한 남극기지는 세종기지만이 아니다. 남극점 인근에 위치한 러시아의 보스토크 기지는 3월 최고기온 -17.7도를 기록했다. 이는 관측 이래 3월 최고 기온이며 3월 평균 최고기온보다 35도 이상 높은 것이다. 프랑스-이탈리아 협동기지인 콩고르디아 기지도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인 -11.8도를 기록했는데 이는 평년 기온보다 40도 넘게 치솟은 것이다. 이로 인해 콩고르디아 기지 인근의 콩거 빙붕이 붕괴되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빙붕 붕괴되는건 흔한 일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붕괴된 면적이 약 1200㎢로 한국에서 가장 큰 광역시인 인천과 울산보다 크며 이탈리아 로마 면적과 맞먹는다. 아무리 빙붕이 붕괴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마어마한 면적이지 않은가?

올해 2월, 부산과 울산 면적보다 크며 로마 면적에 맞먹는 콩거 빙붕이 붕괴되었다. (출처 : 나우뉴스)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붕괴된 콩거 빙붕보다 훨씬 거대한 빙붕이 20년 전에 이미 붕괴했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 선장 카를 안톤 라르센이 1983년에 발견한 라르센 빙붕이 그 안타까운 주인공이다. 라르센 빙붕은 남극대륙의 북서쪽 남극반도 해안의 만을 뒤덮고 있는 빙붕이다. 그 위치에 따라 A, B, C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 중 라르센 B 빙붕이 2002년 1월부터 단 6주만에 급속도로 붕괴되었다. 붕괴된 면적은 3,250㎢로 콩거 빙붕의 약 2.7배, 서울 면적의 약 5배가 넘었다. 서울 면적의 5배가 넘는 빙붕이 6주의 짧은 시간에 붕괴되는 것이 이해되는가? 과학자들은 빙붕 붕괴의 가속화 원인이 지구온난화로부터 야기되었다고 추정했다.

20년 전, 서울 면적의 5배가 넘는 라르센 B 빙붕이 붕괴된 모습.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H2a3Oemo1e4)

  붕괴된 라르센 B 빙붕은 해빙(바다로 떨어져 나간 빙붕)이 되어버렸다. 해빙이 된 라르센 B 빙붕은 붕괴 전과 다르게 여름철 바다에 완전히 녹아버렸다. 원래 라르센 B 빙붕은 해안가의 만에 위치하여 육지의 빙하가 바다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고 바닷물이 육지로 밀어들어오는 것을 어느정도 막아주었다. 하지만 붕괴된 라르센 B 빙붕은 여름에 완전히 바다에 녹아버렸고 육지의 빙하가 바다로 빠르게 유입되었다. 해빙은 원래 바다 위에 떠 있기 때문에 녹더라도 해수면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육지의 빙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면 그대로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라르센 B 빙붕과 같이 큰 빙붕의 붕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해수면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재밌는 사실은, 2011년 여름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라르센 B 빙붕이 다시 여름에도 얼어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 1월 중순 관측한 결과 11년 만에 라르센 B 빙붕이 여름에 재차 붕괴되었으며 육지의 빙하가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자세한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11년간 여름에도 얼어있던 라르센 B 빙붕이 재차 붕괴된 것은 결국 지구온난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음 기사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earthobservatory.nasa.gov/images/149410/larsen-b-embayment-breaks-up#)

2011년~2022년 1월 중순까지 여름에 다시 얼었다가 최근 다시 붕괴한 라르센 B 빙붕. (출처 : https://earthobservatory.nasa.gov)

  콩거 빙붕과 라르센 B 빙붕처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세종기지 바로 근처에도 '마리안소만 빙벽'이 있다. 높이는 150m~200m 정도이며 기지로부터 4km 정도 떨어져 있어 기지에서 잘 보일 정도로 가깝다. 간혹 날씨 좋은 날 월동대원들과 마리안소만 빙벽 쪽으로 트래킹을 하기도 한다. 트래킹 가는 날이면 백이면 백, '우루루 쾅쾅' 천둥소리, 집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리안소만 빙벽이 무너지는 소리이다. 가슴 깊이 울리는 그 웅장한 소리를 들으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처음 트래킹을 갔던 날에는 천둥소리를 듣고 어디서 빙벽이 무너지나 궁금해 여기저기 둘러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빙벽이 무너지고나서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이미 소리를 들었다면 빙벽이 무너진걸 보기에는 늦었다는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 사실을 알고나서는 빙벽이 무너질 곳을 예측하여 지긋이 응시다가 빙벽 무너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무너지는 마리안소만 빙벽. 아쉽게도 소리는 담지 못했다. 정말 아름답고도 슬픈 광경이다.

  빙벽 무너지는 것을 자주 보면 남들이 못보는 광경을 봐서 좋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이 되었다. 마리안소만 빙벽은 20년 전에 비해 1~2km 정도 후퇴했다고 한다. 매년 조금씩 후퇴하다보면 지금부터 20년 후에는 빙벽이 더 멀어질 것이고 40년 후에 세종기지의 월동대원들은 더이상 기지에서 마리안소만 빙벽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그때가 되면 출근할 때 쉽게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마리안소만 빙벽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굳이 먼 길을 가야할테고, 어쩌면 해수면 상승때문에 해안가에 인접한 세종기지가 수몰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기지 앞 해안에서는 빙벽에서 떨어져나온 유빙을 쉽게 볼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잃는 것은 빙벽과 같은 아름다운 남극의 광경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생물의 터전이 위협받을 것이며 어떤 종은 멸종할 것이다. 그 종이 인간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땐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엔 더워서 싫고 겨울엔 따뜻해서 좋았는데 (이젠 북극발 한파때문에 겨울에 따뜻하지도 않다) 정말 단순한 생각이었음을, 무너지는 빙벽을 볼 수 있는 남극에 와서야 느낀다.

지난 3월 30일 드론으로 촬영한 마리안소만 빙벽. 검은 원이 빙하가 녹아 기반암이 드러난 곳이다. 흰색 원은 20년 전 빙하였던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녹아서 바다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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