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알려드립니다 (4) - 펭귄마을 방문기1
세종기지에서 약 도보 20분 거리에는 남극특별보호구역(ASAP No. 171, An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이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남극의 동물들이 서식 중인데 특히 펭귄이 많이 서식하여 ‘펭귄마을’로 불린다. 2021년을 기준으로 턱끈펭귄과 젠투펭귄이 이곳 펭귄마을에 약 4,800 둥지를 틀며 보금자리를 형성하고 있다.
펭귄마을 출입허가증이 있더라도 함부로 펭귄을 만질 수는 없다. 귀여운 펭귄도 엄연히 보호받아야 할 남극의 생물이기 때문이다. 새끼펭귄이나 알을 구경하기 위해 가까이 가면 겁을 먹은 부모펭귄들이 둥지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하는데 그러면 새끼펭귄이나 알이 보온이 되지 않아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의 개입으로 펭귄 생태계가 교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로지 연구목적으로만 가까이 가거나 접촉이 가능하다.
월동대원들과 트래킹 겸 처음으로 펭귄마을을 방문했을 때 펭귄들이 너무 많아서 징그럽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서서 빽빽하게 서식하는 펭귄들을 보고 있자니 펭귄마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새삼 느꼈다 (내가 이름 붙였다면 ‘펭귄나라’라고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펭귄이 조류가 맞다는 것을 ‘후각’으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닭똥 냄새가 코를 깊숙하게 찔렀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질소 노폐물을 암모니아, 요소, 요산 형태로 배출한다. 이중 암모니아는 무척추 동물, 요소는 포유류와 양서류 등이 배출하는 형태다. 조류, 파충류, 곤충류는 요산을 배출하는데 오줌이 아닌 똥에 흰색으로 섞여 나온다. 펭귄도 조류이기에 요산을 똥과 함께 발사한다 (펭귄들이 배출하는 모습을 보면 발사가 더 어울린다). 사람은 요소를 물에 희석하여 오줌의 형태로 배출하는 반면 펭귄은 요산을 그대로 발사하기 때문에 그 냄새는 훨씬 농축적이다. 게다가 펭귄은 개나 고양이처럼 배출장소를 따로 두지 않는다. 그냥 둥지에서 그대로 발사한다. 옆에 다른 펭귄이 지나가는 것과 상관없이 발사하고 싶을 때 엉덩이를 둥지 밖으로 빼내고 발사한다. 둥지 밖에 있을 때도 발사하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나 발사한다. 그래서 펭귄마을은 그야말로 똥천지이다.
그런데 펭귄똥 색을 보니 주황색, 흰색, 노란색 등 다양했다. 왜 다양한 색인지 궁금하여 펭귄연구원분께 여쭸더니 어떤 먹이를 먹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하셨다. 펭귄은 공동육아를 하는데 부모펭귄 중 한 마리가 새끼를 돌보면 나머지 배우자는 먹이를 구하러 간다. 펭귄의 먹이는 주로 크릴인데 먹이를 금방 섭취하고 돌아온 펭귄의 똥은 주황색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둥지에서 새끼를 돌보는 배우자 펭귄은 장시간 먹이를 못 먹었기 때문에 흰색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펭귄똥을 자꾸 보면서 ‘얘들은 뭘 먹길래 냄새가 지독할까, 끊임없이 발사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펭귄먹이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기후변화에 따른 펭귄 먹이 변화를 분석한 연구를 찾을 수 있었다 (Trivelpiece et al., 2011, McMahon et al., 2019).
이 연구에서는 남극 반도에 서식하는 두 종의 펭귄의 먹이가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했다. 연구의 분석대상인 펭귄은 턱끈펭귄과 젠투펭귄으로, 펭귄마을에 서식하는 종이라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턱끈펭귄과 젠투펭귄은 서로 가까운 서식지에서 번식하며 먹이를 섭취하고 번식을 하는 등 비슷한 습성을 보인다. 하지만 지난 40년 간 남극반도의 두 펭귄 개체 수 변화는 현저히 다르다. 턱끈펭귄 개체수는 최대 53%까지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젠투펭귄은 6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습성이 비슷함에도 두 펭귄 종의 개수에 차이가 나는 것은 환경변화에 따라 그들이 어떤 먹이를 섭취했냐로 설명될 수 있다.
182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펭귄의 주요 먹이인 크릴새우의 양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감소하거나 증가하였다 (연구에서는 Krill availability of penguins로 표현했는데 편의상 양으로 해석했다). 크릴새우의 양은 1820년부터 1970-80년대까지 증가하는 추세였다. 왜냐하면 펭귄의 경쟁자, 즉 크릴새우를 잡아먹는 다른 남극 동물인 물개와 고래의 개체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왜 이들의 개체가 감소했을까? 무분별한 사냥 때문이다. 각각 1820년~1860년대는 물개사냥, 1900년~1970년대는 고래사냥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그래서 크릴을 잡아먹는 물개와 고래 개체수가 감소했고 턱끈펭귄과 젠투펭귄은 굳이 다른 먹이를 찾을 필요없이 풍부한 크릴을 섭취해왔다.
하지만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1980년대에는 물개와 고래사냥이 감소하여 두 포유류 개체수가 점점 회복되었다. 반면 1980년대부터 크릴새우 어업이 발전했고 지금까지 약 40년 간 크릴새우의 개체수는 점차 감소하였다. 동시에 지구온난화 때문에 해빙이 감소하고 해양 산성화가 가속화되었는데 이 역시 크릴새우 개체수가 감소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지난 40년 간 턱끈펭귄은 감소했고 젠투펭귄은 증가했다. 왜 개체수에 차이를 보일까? 그 이유는 두 펭귄이 먹이변화라는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턱끈펭귄은 크릴새우가 감소해도 여전히 대부분의 먹이로 크릴새우를 선택했다. 하지만 젠투펭귄은 크릴새우가 감소하자 물고기 등 다른 먹이를 구하며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연구에서는 좁은 먹이범위를 갖는 턱끈펭귄을 specialist species, 넓은 먹이범위를 갖는 젠투펭귄을 generalist species로 표현했는데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었다. Generalist 젠투펭귄이 specialist 턱끈펭귄에 비해 먹잇감을 다양하게 구하며 환경변화에 잘 대처한 것이 개체수 증가에 영향을 준 것이다.
얼마 전 다시 펭귄마을에 방문했다. 블리자드가 부는 겨울이라 대부분의 펭귄들은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아직 떠나지 않은 펭귄들만 조금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펭귄마을을 조용히 뒤덮고 있었다. 추워서 그런지 펭귄똥냄새도 심하지 않았고 귀여운 발걸음을 옮기는 펭귄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한편으론 연구내용 때문에 착잡했다.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펭귄들이, 인간들의 무분별한 포획과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들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멀리 돌아가도, 인기척을 느끼면 즉시 달아나는 펭귄들을 보며 한 인간으로서 자연에 용서를 구하게 된다.
*참고논문
McMahon, Kelton W., et al. "Divergent trophic responses of sympatric penguin species to historic anthropogenic exploitation and recent climate chang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6.51 (2019): 25721-25727.
Trivelpiece, Wayne Z., et al. "Variability in krill biomass links harvesting and climate warming to penguin population changes in Antarctic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8.18 (2011): 7625-7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