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했다면 출산 1~2개월 전에 꼭 결혼반지를 빼 둬라. 출산 전 막달에는 몸이 많이 붓기 때문에 결혼반지가 안 빠질 위험이 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평소 잠잘 때도 수영할 때도 씻을 때도 항상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우리 부부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하는 날에서야 아니카(와이프)의 손에서 결혼반지를 빼려고 했다. 그런데 도무지 빠지지가 않았다. 퐁퐁도, 오일도, 실을 칭칭 감아서 조금씩 빼내는 방법도 실패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도무지 빠지지 않아서 119 센터 가서 절단했다는 케이스가 많았다. 아니 이게 얼마짜린데..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왜 진작에 사람들은 경고하지 않았던 거지... 잦은 시도로 손가락이 부풀어 올라 더 이상의 빼려는 노력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우린 저녁에 다시 시도해보기로 하고 일단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온갖 검사를 끝내고 드디어 약속한 저녁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반지는 빠지지 않았다. 퐁퐁도, 실도 역시나 실패였다. 아니카는 반지를 그냥 안 빼고 수술하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출산 직후에는 몸이 더 붓기 때문에 자칫하면 손가락이 괴사될 위험도 있으니 어떻게든 빼야 했다.
결국, 우린 염치 불고하고 119에 전화해서 반지를 절.단. 하기로 했다. (바쁘실 텐데 출동 요청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세금 많이 떼더라도 군말하지 않겠습니다..) 119 대원 분들을 병원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해서 나는 아니카를 휠체어에 태워 1층으로 내려갔다. (실제로는 걸을 수 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119 대원 분들은 반지와 손가락 틈새에 작은 보호대를 끼워놓고 그 위로 그라인더로 이용해 갈기 시작했다. 반지의 금이 조금씩 갈려갈 때마다 내 마음도 갈리는 기분이었다. 1층 로비에서 작업을 진행했었는데 심심한 환자들이 링거를 손에 잡고 그 모습을 구경해서 불편했다.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많은 아니카, 웨딩밴드를 절단해야 해서 속상한 아니카를 구경거리로 만들 수 없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야를 몸통으로 가리려고 노력했다. 웨딩링은 금이라 잘 잘렸지만 가드링은 조그만 다이아로 박혀 있어서 단단해 잘 잘리지 않았다. 결국 웨딩링만 그라인더로 잘랐고 다이아 가드링은 희한하게도 펜치로 자르니 금세 잘렸다.
결국 반지는 절단에 성공했고 지금 그 절단된 반지는 아니카의 화장대 서랍에 있다. 아니카가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면 다시 판매점에 찾아가서 붙일 것이다. 여차하면 반 치수 정도 늘려서. 아니카는 무척 속상해했지만 그래도 반지가 결국 빠져서 속이 다 시원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그전까지 수술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던 아니카가 온통 신경이 반지에 뺏겨 다른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들. 임신을 한다면 꼭 반지를 미리미리 빼자. 수많은 절단러들의 눈물 섞인 충고다. 이 충고를 까먹고 나중에 나처럼 "왜 진작에 사람들은 경고하지 않았던 거지"라고 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