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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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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02. 2023

제왕절개 직후의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자세

 드디어 출산의 날.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는 초조히 밖에서 기다렸다. 수십 분이 지나고 튼똑이가 먼저 수술실에서 나왔다. 나는 사진, 동영상을 많이 찍으라는 명령이 있어서 따로 포토타임(?)이 별도로 있을 줄 알았는데 당연히 그런 건 없었고 튼똑이가 수술실에서 신생아 관리실로 직행하는 동안 옆에 쫓아가면서 파파라치처럼 사진을 찍어야 했다. (튼똑이를 처음 만난 감상은 다른 글에서 쓰겠다.)

 그리고 수십 분 뒤, 드디어 아니카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아직 약에 취해 있는 상태였지만 아프다고 난리였다. 엘리베이터 탈 때의 턱 같은 작은 충격에도 민감했다. 제왕절개는 고통의 ‘후불제’라고 했던가? 병실에 돌아와서는 아내는 거의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상처가 아픈 것도 있지만 허리디스크 환자였던 아니카는 딱딱한 침대에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어떤 고통도 경감시키지 못한 채 옆에서 무기력했다. 아니카의 고통을 경감시킨 것은 내가 아니라 페인버스터와 무통주사였다. 그렇게 어쩔 줄 몰랐던 2~3시간이 지나고 이제 약발이 좀 나오는지 저녁 쯤엔 조금 더 얌전해졌다. 그렇게 첫 하루가 지나갔다.      


 수술 2일차.

  허리는 괜찮아졌지만 이제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상처가 아니라 변비 때문이다.) 찬바람을 뚫고 약국을 대여섯 곳 들려서 장에 좋다는 푸룬주스도 사고 마그밀이란 약도 처방받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니카는 힘들어했고 나는 옆에서 보좌하면서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핸드폰 충전하는 것, 침대 등 올리는 것, 안경 벗기는 것처럼 사소한 심부름도 나는 궂은 소리하지 않고 맡아서 했다. 잠결에 누웠어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즉각 반응했다. 거의 이등병 마인드로 나의 자아를 없애고 심부름을 했다. 우리 아기의 탄생에 있어서 모든 고통을 혼자 독박 쓴 와이프가 가장 약한 상태일 때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날 밤인지 다음 날인지 아니카는 화장실에서 제2의 출산을 했고 이제야 나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신생아 면회, 걷기 연습, 유축, 상처 치료 등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옆에서 함께 했고 드디어 7일차에 나는 아니카와 함께 퇴원할 수 있었다. 장장 6박 7일 간의 병원 생활이었다. (막판엔 장모님 찬스로 병원 바깥에 나가서 대구탕에 맥주도 혼자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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