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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Nov 25. 2021

관계의 착각

너와 나



 나와 당신에게서 일어나는 감정의 골이 그저 서로의 예민함, 선택된 언어의 문제라기보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거울 세계로 반영하는 귀머거리식 소통 때문일 것이다.



안다.


  내가 마음을 가라 앉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며 어떤 의도도 섞지 않고 수용하면 된다는 것을.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머리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솟구쳐 오르는 마음은 이성과 뒤엉킨다. 나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마음이 이성을 뚫고 나갈 때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마음의 수면에 던져진 돌은 대체 누구의 짓일까. 내 마음이니 그 속에 있던 '내'가 던진 게 분명하다만, 누군가 던졌다고 여겨지는 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인 내가 '타인'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어떤 때든 일관된 모습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일체의 법은 자신을 위하는 모습도 없고,
 다른 이를 위하는 모습도 없고,
 자신과 다른 이를 위하는 모습도 없으며


 부처의 말처럼 내 마음도 사실은 허상일까. 그렇다면 그때마다 솟구치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흩어지게 만들어야 할까.



 최근에도 그러듯 나는 몇 년간 힘겹게 줄다리기 해왔던 관계가 개선 됐다고 믿었다. 어제보다 완화된 표현을 쓰고, 함께 있는 게 편해진 것이 당신과 나의 관계가 성장했기 때문이라 여겼다. 여기엔 내 오만함이 있다. 관계가 개선될수록 내가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됐다는 착각이다. 그것이 정말 개선된 것인지, 간신히 줄다리기처럼 팽팽한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실체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때그때 일을 무마하며 겉으로 보이는 그럴싸한 성공에 취해서 근본적인 것마저 해결된 것처럼. 드디어 어려운 숙제를 풀었다고 이른 축배를 들었다.

 글쎄다. 뾰족한 감정을 쥐어짜듯 누르며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인지 당신과 싸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다 보면 치열한 전투 속에 피폐해진 나와 내가 있을 뿐이다. 나와 내가 왜 서로 힘든 감정들을 쏘아대며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푸념을 하다 보면 나는 나를 위로하고 철문을 굳게 닫고, 앙금을 밖으로 쏘아댄다.



 아, 이제 보인다. 몇 년간 너와 나는 서로 애썼지만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거대한 벽을 쌓아 불손한 마음을 숨기고, 벽 뒤에 숨어 상대가 나를 위해 희생해 주길 바라는 폭력을 휘둘러 왔던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물리적 거리가 단절되지 않는 이상,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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