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채 한 달도 안 남았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지난달 20일부터 사전 투표 절차가 시작됐다. 트럼프 후보를 노린 두 번의 암살 시도,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포기, 대통령 후보직을 승계한 해리스 부통령까지 지금 미국의 정치 상황은 복잡다단하다. 세계의 관심이 온통 미국 대통령 선출에 쏠려있다. 누가 뽑히느냐에 따라 국제 정세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미국을 안다는 착각>에서 미국을 낱낱이 들여다보자. 미국 샌디에이고시립대학에서 미국인에게 미국사를 가르쳤던 한국인 교수로 알려진 김봉중 교수는 책에서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문화까지 이 거대한 나라의 빛과 그림자를 솔직하게 말해준다.
미국은 내가 살고 있는 곳, 다른 사람보다는 비교적 잘 안다고 여기는 곳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우선 뿌리부터 들춰본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현재의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은 남북 전쟁이다. 건국 시작부터 미합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남과 북의 지역갈등은 노예제도라는 도덕적 문제를 포함해서 정치, 경제, 정서, 문화적 갈등이 더해져 연방의 심각한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어느 나라든 내전은 피할 수 없는데 모든 나라가 극복하고 강한 나라를 건설하지는 않는다. 결국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만약 미국이 남북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김봉중 교수는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 때문이며,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미국의 강력한 우방인 일본 때문이며,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냉전의 마지막 혹, 북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882년에 체결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미국이 방기했기에 우리는 러일전쟁 이후 나라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그 이유는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와 그에 따른 미국 내 갈등과 혼란 때문이었다. 6.25가 5년 전에 발발했거나,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 발발했거나, 베트남 전쟁 이후에 발발했다면 과연 미국이 개입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미국에게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다만 한국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다만 한국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국민들이 책임을 지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 p. 83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바로알기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세계의 경찰관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며, 자유무역 확산에 앞장서는 대신 보호무역으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국제 안보는 불안정해졌고, 미중 무역 전쟁은 가열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수출, 한미 관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세계 군사 개입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바이든 현 정부는 표면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1750억 달러 이상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해리 트루만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마셜플랜으로 유럽에 대대적인 재건 복구 자금을 투여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전쟁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대선 이후에는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미국을 보면 우리가 보이고, 세계가 보인다. 세계화의 중심에 미국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이 거쳐간 다양한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분야 빛과 어두움은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을만하다.
예컨대 다문화주의는 오랫동안 미국의 특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한국도 진지하게 고려할 현상이 되었다. 동성 결혼, 마약, 여성의 권익 등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미국의 자부심과 아픔은 우리에게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13개 주에서 순식간에 50개 주로 영토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미 대륙에 어떤 행운과 불행이 교차했는지, 자유와 평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가 인종 차별, 빈부격차, 마약, 총기 사고 등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의문투성이인 미국 정치와 사회의 해법을 고민해보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