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나면 가까운 미술관을 찾는다. 나에게는 미술관이 여행지이자 휴양지다. 최근에는 버지니아 로튼에 있는 워크하우스 아트 센터(Workhouse Arts Center)에 다녀왔다. 우연히 찾아간 곳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역동적인 창작 활동과 생기에 전율했고, 전시장에서 만난 아름다운 작품들의 온기에 감동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계 작가들의 작업실이나 전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음에 다시 왔을 때는 한국계 현대 화가들 작품으로 가득차 있었으면 좋겠다고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문득 궁금해졌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은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렇다고 다짜고짜 인스타그램 디엠을 보내기는 쑥스러우니 <방구석 미술관>을 빌려 선인들의 안부를 전해 들을까한다.
책은 20세기 한국 미술의 거장 10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장은 “반 고흐는 아는데 왜 김환기는 모를까요?” 라는 물음으로 출발한다.
고흐, 모네, 피카소 등 서양 회화는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에서 익히 들어 친숙하기 때문일까. 완전히 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 서양 미술의 조류를 물어보면 교양 수준으로 읊을 수는 있다. 고흐는 이래서 위대하고, 모네는 저래서 위대하고. 과거를 살다간 평가가 수월하다. 그들의 예술성을 논하는 일은 후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낭만파, 인상파로 구분해 놓으면 그것이 정답으로 굳어져 수천 년이 지나도록 이어진다.
서양의 미술사조와 화가들에게 보이는 관심에 비하면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은 유독 차갑다. 미술 교과서에서 봤던 이중섭의 '소'나 박수근의 '농악' 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화가가 몇이나 될까. 책에서 김환기 화백을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가를 기록한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은 한국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궁핍하고 절망적인 시기에도 예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화가들의 삶을 건 싸움이 이루어진 시기다. 김환기 작가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락한 지주의 삶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중매로 만난 아내와 이혼하고 이상의 전처인 김향안과 재혼해 평생을 함께한다.
김환기 화가는 추상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조선의 미를 추구하는데 백자의 아름다움에 반해 작품에 달과 항아리를 많이 썼다. 고향인 안좌도를 일찌감치 떠났지만 섬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작품 ‘섬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다.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들, 알록달록한 빛의 해와 달, 자연을 닮은 초록 부채들은 포근함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은 한국전쟁 때 제주도로 내려간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낭만은 잃지 않았다. 서귀포 앞바다의 풍경을 보며 평화로운 일상이 낙원이라는 부제의 ‘서귀포의 환상’을 완성한다. 오랜 피난 생활로 생활고에 시달린 부인과 두 아들은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떠나고 평생 생이별을 한다. 이중섭은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엽서에 빼곡히 맑은 그림을 수놓으며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
현대에 가까워지며 백남준과 이응노는 근대적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백남준은 기존 예술계가 예술 각 분야를 분리하는 행태를 행위예술로 표현한다. TV가 등장한 후부터는 매체의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반발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이렇듯 격변하는 시대 속에 자기만의 세계를 꾸리고 예술을 매개체로 타자에게 말을 거는 한국의 미술가들은 예술성이나 작품 완성도면에서 뛰어난 발자국을 남겼다. 책은 우리에게 관습적으로 인식되던 ‘동양적 한국 미술’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한 인간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에도 소개한 김구 선생의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라는 백범일지 한 구절이 새삼 와 닿는다.
우리 스스로가 아닌 서구 주도로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적 유산은 과거의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며 단절되었습니다. 반면 서구의 문물은 새롭고 진보된 것으로 여겨지며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이 20세기 내내 일어났죠. 그런 근대화 현상은 서구에서 만든 것이 우리가 만든 것보다 좋다는 착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근대화의 잔재는 현재까지도 사회문화 전반에 남아 있으며, 미술에 대한 인식에도 역시 남아있습니다. - p.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