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도서 칼럼니스트로서 깨달은 한 가지는, 세상에는 정말 좋은 책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 질문하고, 경청하고, 기록하기를 업으로 하는 내 주관적인 기준을 말하자면 우선 흥미가 있어야 하고, 술술 책장이 넘어가야 하며, 읽은 뒤 잠시라도 여운이 남는 책을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책을 만나다 보면 나만의 기준에 꼭 들어맞는 책을 보는 순간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또 이렇게 추천한 책이 남들에게 읽히면 마치 내가 뭐라고 해낸 듯이 뿌듯하곤 하다. 정말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책도 있다. 그런 책과 독자들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이 어쩌면 내 소명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은 한국 현대 시를 대표하는 얼굴,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을 들고 왔다.
1979년 등단 이후로 시 쓰기를 멈춘 적이 없는 김혜순 시인이 올해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국제문학상(HKW International Literature Award)을 수상했다. 이미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하고, 한국 최초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단의 이목을 끌었던 그는, 이번 수상으로 다시 한 번 저력을 증명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어로 쓴 시가 언어 장벽을 넘어 감수성, 세계적 공감 가능성까지 인정받은 순간이다.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활활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혹은 앞이 아득해지는 극한의 어둠이 떠오른다. <죽음의 자서전>이 대표적이다.
이 시집은 불교의 49재 형식에 착안해 49편의 시로 구성된다. 각 시에 붙은 부제는 하루부터 마흔 아흐레까지 이어지며, 고통과 죽음,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와 개인적 체험이 반복되고 겹치면서 독자에게 일종의 '시간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이 반복과 순환의 시적 장치는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 지금과 과거, 개인과 사회가 서로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의미들이 깨어지고 재구성되는 구조다.
시인은 2015년,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경험을 한다. 삼차신경통으로 인한 통증에 대해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묘사한다. 그 순간부터 잠이 들지 않아도 죽음의 세계를 떠도는 몸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 체험은 살아 있는 모든 감각을 깨우는 동시에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깨닫게 했다.
이 시집은 메르스 사태, 세월호 참사, 국가 폭력 등 한국 사회를 덮친 대형 비극들을 불러낸다. 죽음은 여기서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것이 되고, 국가의 책임 문제와 잊혀짐의 문제, 역사적 상흔의 문제로 번진다.
네가 문밖으로 튕겨져 나왔나 보다. 네가 죽나 보다. / 너는 죽으면서도 생각한다. 너는 죽으면서도 듣는다. / 아이구 이여자가 왜 이래? 지나간다. 사람들. / 너는 쓰러진 쓰레기다. 쓰레기는 못 본 척하는 것. - 출근, 하루 중
시는 애도의 방식이기도 하다. 수많은 죽음이 얽히며 형성된 합창에 가깝다. 각 시편은 개별적이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닿아 독자를 거대한 진혼의 공간으로 이끈다. 이 반복적이고 집요한 구조가 만들어내는 압도감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까지도 그 세계에 서 있는 듯한 체험으로 이끈다.
김혜순의 시는 시적 언어는 기괴하면서도 낯설게 아름답다. 49편 전체를 관통하는 부패, 질식, 핏빛 이미지는 한국 사회에서 비롯됐지만 특정한 사건에만 묶여있지 않다. 죽음을 기록하는 언어가 어떻게 세계적 공감의 언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시는 국경을 넘어선다. 독일 국제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존엄한 죽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의 합창”이라고 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음의 자서전>은 죽음을 통해 삶의 언어를 다시 배우게 하는 시적 기념비다. 심연의 어둠이 이어지다가 불현듯 경쾌한 리듬과 블랙 유머가 스며드는 독특한 문체를 쓰는데, 그것은 죽음을 비극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통해 살아 있음의 감각을 되묻는 힘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