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리고 변화
스무살의 겨울, 부러지고 닳아 그 모냥도 갖추지 못하고 있던 나를 찾아오셔서 흔들고 흔들어 제 자리를 찾게 해주셨던 분이 있었다.
내가 그 분께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받은 은혜가 곱절로 느껴져 무언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저, 네가 베풀수 있는 그릇이 되거든 그 누군가에게 정을 나누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셨던 선생님.
처음 강의를 듣던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다들 굳은 표정으로 강의를 들어와 앉아있고,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작은 체구, 당당한 걸음걸이, 뻔뻔하고 카리스마 있는 눈빛.
어느새 이 수업 괜히 신청했다 싶은 걱정스런 마음은 사라지고 왠지 재밌을거 같기도 하다는 느낌으로 수업은 마무리 되었다. 아마 모든 학생들 또한 한 학기에 대한 긴장이 반쯤 풀린체 교실을 나섰을거다.
하지만 새 학기의 설렘은 내가 누릴게 아니라는듯, 방학동안 체전 대표로 선발됐었던 나는 체전합숙훈련 일정에 맞춰 개강과 동시에 학교를 떠나 지내게 되었다.
처음 출전하게 된 전국체전. 우리 학교 출전 선수 5명중 유일하게 메달을 못따고 돌아오는 비운의 주인공이 됨과 함께 손까지 부러져 수술을 하게 되는 악운이 닥친다.
악운도 악운이랄게, 내가 시합뛰기 전날 아버지가 현장 사고가 나셔서 큰 수술을 받고 의식이 없으셨던 것. 나는 그것도 모른체 손 부러진 아들 데리러도 안오냐고 투덜대고 있던 것.
혹시나 시합에 지장이 있을까봐 비밀로 하셨던 부모님 마음이 너무 죄송스러, 나는 괜찮다며 아버지 병간호에 신경쓰시라며 아픈 아버지를 두고 혼자 천안에 내려와 입원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 또, 학생의 신분으로서 학기 절반 이상을 빠지고도 중간고사 까지 못 볼거 같다는 소식을 고작 OT때 얼굴 한번 내민 내가 교수님들께 전해드리게 됐다.
수술을 마치고 몽롱한 상태로 병실에서 눈을 처음 떴을때 내 자리에 어떤 아저씨가 던킨도넛을 사들고 오는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모르는 사람인데. 다시 눈을 감았다.
회복이 제법 되고 정신을 차리고나니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그 교양수업 교수님이였다. 이내 죽을 사다주셨고 남김없이 싹 비우고나서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시작했다.
한 학생이 학기의 반절이 되도록 수업 한번 안나오고 터무니 없이 또 수업을 못나온다하여 괘씸한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으로 직접 찾아오셨다고 한다. 수업에 F를 줘야하나 고민하다 찾아오신길에 수술 끝나고 가장 아파할때 모습을 보셨으니, 괘씸한 마음은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하셨다.
새벽이 다 가도록 병원 곳곳의 복도에서 둘이 대화를 나눈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내 이야기를 했고, 교수님은 교수님 이야기를 했고, 나는 위로 받고 이해받았다. 비록 나는 교수님을 완전히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 그랬고 왜 그랬는지. 그날은 마음이 정말 아픈날이였다. 무통주사를 달고도 아픔이 아프게 느껴져 참 아팠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과 이상이 앞선 청춘이기에 당연했던걸, 지금도 마찬가지인걸, 그땐 내성이 없었던건지도.
눈물 쏟는 대화를 나누고 우린 친구가 됐다. 잘못된 표현인지는 몰라도 정말 친해졌다. 38의 노총각과 20살의 덩어리는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교수님은 수업을 마치면 내가 있는 병원으로 오셔서 나와 대화를 해주시곤 했다.
혼자 하기 어려울 거 같은 모든걸 도와주셨다. 빨래도 해주시고, 머리도 감겨주시고, 고기도 사주시고, 열이 펄펄 나던 날에는 머리에 물수건도 갈아주셨다. 너무 죄송하게도 말이다.
취미가 청춘들을 흔들어 놓는 것 이라는 말을 하셨었다. 나 또한 엄청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정식으로 혼난건 아니지만 얼굴 시뻘게지도록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어리고 나약한 모습을 들어내고 다시금 생각 할 수 있게 하곤 하셨다.
그 뒤, 수술비가 우연스레 마련되어 생각보다 빠르게 퇴원을 하게 되었고, 중간고사도 맞춰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나는 교수님의 초대를 받아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도 갖게 되었다. 몇번은 교수님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계기이자 원동력이 되어준 교수님. 낡은 운동화를 보고 새빨간 300짜리 운동화를 사다주신 교수님. 내가 가장 힘들때 내 옆에 계셔주셨던 교수님.
언젠가, 교수님께 왜 내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냐 물었을때.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또한 언젠가 누구에게 이렇게 도움 받지 않았었겠니, 내가 알건 모르건.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갚아나가는거지 뭐. 작은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나이들고 늙었을때 서로 잊지 않고 한번씩 찾아와 안부 물어주는거랄까. 너도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누군가에게 나처럼 베푸는 사람이 된다면 그만한 것도 없지."
그때 내가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확신하게 된 것 같다. 교수가 되는게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수가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신 내 은사님. 덕분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