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남의 이야기 인 줄 알았네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폭발적으로 화내던 나
“너, 왜 이렇게 엄마 힘들게 하는 거야? 왜 그러냐고?”
“으앙~~~ 엄마~~ 으앙 “
나는 응가한 첫째를 내려보면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시작은 평범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지 못하고 울분 터진 경우. 시작은 이랬다. 첫째는 응가한 채 씻기 싫다고 떼를 썼고, 나는 엉덩이 씻고 놀면 되지 않냐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는 짜증을 내며 장난감을 던졌고, 나는 그것에 얼굴을 맞았다. 알지만…. 머리로는 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뭐에 홀린 듯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솟구쳤다. 결국 폭발적으로 화를 냈다. 그 소리에 애는 놀라서 울기 시작했는데, 그 울음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화는 더 나는 거다. 머릿속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현기증이 났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첫째의 눈빛.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울고 있는 우리 아기. 그 눈빛을 보고서야 정신이 돌아오며 아차 싶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뭔가 잘못됐어…
나도 같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애를 끌어안고 울었다. 별거 아닌 일,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화내는 빈도가 잦아진 나.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느끼는 것 하나는 내 새끼가 항상! 무조건! 예쁘지는 않다는 사실. 애교 부리며 함박웃음을 날리며 “엄마~~~”하고 달려와 안기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엄마지만, 떼를 쓰거나 정성껏 만든 밥을 뱉을 때는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자기 새끼를 떠올리는 것이 엄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소중한 아기가 밉게만 느껴지고, 아이에게 화내는 빈도가 잦아진다면? 남편과는 별일 아닌 일에 다투는 일이 잦고, 어느 날에는 내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어서 눈물이 나는가? 혹시 식욕이 없고 먹어도 많이 먹지 못하고, 잠까지 설친다면?
당신은….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수준을 넘어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거다. 육아 우울증 자가테스트 항목을 첨부한다. 하지만 이런 자가테스트 하지 않아도 엄마 스스로 잘 안다.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 내가 이상해지고 있어…
육아 우울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1.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반복된다.
2. 도무지 즐거운 일이 없다.
3. 불면증에 시달린다.
4. 체중이 줄고 입맛이 없다.
5. 안절부절못하거나 몸이 처져 있다.
6. 피곤하고 기운이 없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7. 사고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뭔가를 결정하지 못한다.
8. 내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부적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9. 죽음, 자살 생각이 나거나 시도 경험 혹은 계획이 있다.
※ 5개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1, 2번 중 하나는 필수).
자료: 강동경희대병원
#육아 우울증, 만만히 봤다간 큰 코 다친다
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육아 우울증을 겪었다. 입덧에 시달리고 불면증에 잠 못 드는 밤들… 임신했는데도 몸무게는 줄어들고 무기력하고. 그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은 첫째 아이가 이상하게도 예뻐 보이지 않는 거였다. 아이가 밉게 느껴지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엄마인데, 아이가 밉다니? 왜? 이상해’ 당황스러운 감정과 죄책감, 미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온 정신이 호르몬의 노예로 곤두서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쯤 아이를 기관에 맡겼으면 그 정도로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건만, 미련하게도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첫째 아이는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며 고집과 떼쓰기가 늘었고, 난 둘째를 임신해서 입덧이 시작되고. 이 두 가지가 맞물린 봄날부터 난 서서히 크레이지 노선을 타기 시작했다.
둘째 입덧 때는 다행히 시댁 도움을 받았다. 짐을 싸 짊어지고 애와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뭐라고? 시댁이라고? 친정 행이 정상적인 루튼데 무슨 시댁? 모두 의아해했다. 하지만 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입덧으로 밥을 챙겨 먹는 것이 힘들었는데 나는 그렇다 치고, 밥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마디로 첫째 아이 밥을 챙겨 먹일 수 없는 상황. 아이를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친정으로 갈 수는 없었다. 워킹맘인 언니를 위해 친정엄마는 조카들 육아에 영혼까지 불사르고 계셨다. 친정엄마 도움? 꿈도 못 꿨다. 결국 도움받은 친지는 시댁 어른들이었다. 시댁 행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서울에서는 도움을 받을 친지가 없어서 나는 늘 독박 육아였다.
그렇게 봄을 보내고, 여름이 되니 아들의 팔뼈가 부러진 것이다. 지극 정성 간호 모드의 살신성인 엄마로 변신해서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체력 게이지가 뚝 떨어져 버렸다. 낙엽 지는 가을, 거물이 날 덮쳤다.
이름하여 “임신성 불. 면. 증.”
하루, 고작 3시간 잠자면 많이 잔 날이었다. 이 마 저도 못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임신의 증상이라기보다 육아 우울증의 증상에 더 가까웠다. 잠들었다가도 아이 뒤척임에 깨면 그때부터는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밤. 배는 나오기 시작해서 몸은 무거운데 첫째 아이는 몸집이 커지고 거기다 몸으로 놀아달라고 하고. 내가 미쳐가… 정말… 미쳐가… 노래를 부르며 의자 댄스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랑과의 다툼이 잦아졌다. “이 구역 미친년은 나야! 나 건들면 자폭할 거야” 이성의 경보음이 들려왔다. 카운트 다운 시작. 터지기 10초 전.
응가 사건이 있었던 그날 밤. 책상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노트를 꺼내서 펼쳐놓고는 크게 썼다. 뭔가 달라져야 해. 이대로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