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해진 일상에 심폐소생술을
31살 봄, 충동적으로 퇴근 버스에서 내려 불광 천을 걷고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직장생활과 일상에 이끼처럼 낀 지겨움과 매너리즘을 떨쳐버릴 방법이 뭘까? 그때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클로즈업된 부부가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아기 엄마와 아빠가 유모차를 밀며 벚꽃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였는지. 평온하고 잔잔한 일상의 행복이 느껴졌다. 흩날리는 벚꽃 때문이었을까? 드라마 속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의 정형적인 장면 같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면 이 방황이 끝나지 않을까? 일상에 중심이 잡힐 거야. 사랑하는 남편을 쏙 닮은 귀여운 아이를 안고 있으면 너무도 행복할 거야. 저거야!
결심했다. 31살 봄, 결혼에 목메기로.
어? 결혼이라니? 무슨 말이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남자라면 추측하건대, 말도 안 된다는 반응 일 거이다. 주변의 결혼 적령기 남자들에게 물어봤다. 언제 결혼하고 싶으냐고? 그러자 돌아온 답들은 ‘ 하는 일에서 인정받고 돈도 어느 정도 모은 후쯤 결혼하고 싶다’라고 하더라. 직장에서 흔들린다고 결혼이라니? 눈 동그랗게 뜨고 되물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20대 때로 돌아간다면 나도 그런 반응을 보였으리라. 30대 초반이 되어서 결혼에 목메는 상상은 추호도 해본 적 없다.
그러나 뜬금없이, 전후 사정도 없이 결혼에 꽂힌 것은 아니다. 정이현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에서도 나오지 않은가?
이렇게도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그렇게 말한 시인은 최승자다. 삼십 세에 대한 으리으리한 경고는 너무 흔하다. 스물아홉 가을, 나는 갓난아이에게 홍역 예방 접종을 맞히는 엄마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와라! 서른 살, 맞서 싸워주마. 절대 지지는 않을 테다. 그런 식의, 유치하지만 제법 비장한 각오도 했었다. - 정이현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결혼 조바심’이란 마른 장작에 ‘직장생활의 매너리즘’이란 기름을 부으니, ‘결혼에 대한 열망’이란 불꽃은 맹렬한 기세로 타오른 것이다. 그 당시 했던 결혼에 대한 고민은 다른 지면을 빌어 말하겠다. ‘어제의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진 ‘오늘날의 30대 여자’들에게 “괜찮아! 원래 그런 거야! 편하게 기다려! 넌 충분히 매력 있다고! 알았어?” 이 말들을 하고 싶어서다. 아무튼 우려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결혼 생활이 시작됐다.
소꿉놀이 같이 아기자기한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별 다섯 개’에 다섯을 다 주는 만족, 그 자체였다. 직장 생활의 지겨움은 여전했지만, 뭐 그까짓것? 퇴근 후와 주말에 이어지는 맛집 탐방과 여행들이 보상해주니, 그 정도는 참아줄 말해!
그러다가 아기가 생겼고 출산을 하니, 두 둥!! 여기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맞는가? 똑같은 쌀 밥 먹고, 똑같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삶이라 부를 수 없는 생존에 가까운 생활들이 이어졌다. 직장 신입사원 시절로 돌아갔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 비유로는 부족하다. 신입 시절에는 그나마 연수원이란 곳에서 미리 교육을 받았고, 현업에 부딪혀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면 물어볼 선배들도 많았고. 심지어 업무 매뉴얼까지 있었는데, 육아는? 선배 맘 들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들은 다 틀리고, 내 아이에게는 맞는 정답이란 게 존재할 리도 없고. 혹 있다 해도 아는 사람은?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엄마인 나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자는 것, 그 원초적 활동에도 사력을 다해 해내야 하는 나날들. 그 속에서 32살을 ‘온전한 나로 살아온 나 자신’이 먼지로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첫째 아이가 돌이 지나자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어땠을까? 육아에 만족했는가? 부끄럽게도 아니었다. ‘육아는 아름답지 않아’라는 말을 반복하며, 독박 육아의 탈출구는 직장이라 믿었다. 그렇게 복직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아이러니지 않은가?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이 괴로웠던 내가 복직을 준비하며 엉덩이를 들썩이다니. 아 싸! 독박 육아 탈출!!! 속으로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복 직서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고 기분이 이상하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단 노래가 머리 속에 울렸다. 그랬다. 둘째를 임신한 것이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독박 육아의 시간이 연장된 것이다. 그 날 이후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입덧이 시작됐고, 입덧이 끝나자 ‘임신 성 불면증’이 나를 찾아왔다. 하루에 2시간을 채 못 자면서 종일 아이를 돌보며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 해졌다. 하루하루를 남편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버티고 버텼다. 남편과 다투는 날들이 늘었고, 임신했음에도 살은 빠지고 빠져서 앙상해지고 있었다. 31살의 ‘그때’처럼 힘들고 지치고 답답한 하루하루를 그냥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첫째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는 응가 한 기저귀를 차고 엉덩이를 씻지 않겠다고 버티는 중 이었고, 나는 전날 거의 자지 못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이와 협상(?)을 하다가 아이가 울며 떼쓰고 들어 누웠다. 참고 참다가 어느덧, 압력 밥통에 압력이 차서 뚜껑이 날아가 버렸다.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러니 정신이 아득해지더라. 속 밑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들이 올라와서 눈물이 터졌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고 있는 어떤 엄마의 모습 상상되는가? 이를 보고 있는 겁먹은 아기의 모습은 보이는가? 눈에 들어온 아이의 눈빛은 ‘ 두려움과 공포’였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정신 차려? 그 눈을 보니 번쩍 이성이 돌아왔다. 지나서 생각하니 우울증이 마음의 바닥에 바닥을 뚫어내고 있던 거다.
그 날 저녁, 자고 있는 아들 얼굴을 내려보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이대로는 안돼, 달라져야 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돼. 아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될 것 같단 위기감에 삐!!! 삐!!!!!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맞다. 예상했는가? 노트(일기장)를 꺼내고 펜을 쥐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도 삼십 몇 년을 허송세월 보낸 것은 아니었나 보다. 종이와 펜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 변화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이 달라질까? 해결방법은 뭘까? "
한 줄, 아니 ‘어떻게’와 ‘해결방법’이란 두 단어를 노트에 쓴 후 달라졌다. 그 단어들이 나를 바꿔 준 것이다. 머리 속에 생각들이 정리되고 현상이 분석되면서 발전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당시 내 증상은 우울증에 가깝다는 자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상황을 해결하려면 원인을 알아야만 했다. 따져보니 밥을 못 챙겨 먹고 불면증으로 잠을 하루에 2시간도 못 잤던 것이 원인. 상황을 해결하려면 낮이라도 자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확보하려면 아이를 기관에 맡기거나, 도움을 받은 지인이나 도우미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 원인이 나오니 해결방법이 나오는 논리가 있는 생각들. 그 전 까지는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기관에 보낼 엄두를 못 냈었지만, 결론을 내고 나니 망설임 없이 행동하게 되었다. 아이를 3시간 기관에 맡기기 시작하자 체력 부담이 덜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때의 나와 아들을 구해준 것은 ‘어떻게’와 ‘해결 방법’ 이란 두 단어를 쓴 노트 덕분이었다.
노트 쓰기로 효과를 보게 되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 이 전에도 일기를 쓰긴 썼는데, 왜 그땐 하루에 변화가 없었지? ‘ 그래서 전에 썼던 일기들을 쭉 읽어봤다. 일기라고 말하기 부끄럽게 일주일에 한번 쓸까 말까 한 적이 많았고, 그마저도 부정적인 감정들만 쏟아낸 내용이 전부였다. 내가 쓴 일기인데도 다시 읽기 싫어질 정도의 답답한 이야기. 그 기록을 읽고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 나는 여태 것 도망만 치며 살았구나. 일이 힘들고 지겨울 때는 결혼과 육아로 도피했고, 육아가 힘드니 일과 직장으로 도피하려고만 하고 있구나. 언제까지 도망만 치고 살 건가?
되돌아보니 난 도피만을 꿈꿨던 것이다. 31살 때 결혼에 목메겠다고 결심한 적도 직장에서 집이란 울타리로 도망치겠다는, 다소 불손한 의도였단 걸. 이제 집에서 육아로 힘들게 되니 직장으로 도망치겠다니. 만약 이번에 달라지지 않는다면? 둘째 아이 휴직이 끝나고 도망치듯 직장으로 돌아가면 과연 난 어떻게 될까? 만약 직장에서 또다시 만족하지 못한다면? 도망만 치다가 50세를 맞이할 때쯤, 후회하고 있겠지. 그리고 부끄러워하고 있겠지.
그건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말자. 정면 승부다. 그 결심이 이 글들을 기획하게 된 원동력이다.
질퍽거리는 진흙탕 안에 있다 하더라도 속에서 감사와 만족을 느끼고,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의미를 찾는 방법. 31살에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리라.
두 번째, ‘어떻게’라는 고민은 왜 한 번도 하지 않았는가? 소소하고 별거 없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노력, 그 시도 조차도 하지 않았을까?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고 도망칠 궁리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지난 나를 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나는 고민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민했다기보다 노트에 적고 적었다. ‘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 ' 이렇게 적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단순히 손으로 적었을 뿐인데 그다음은 저절로 손이 움직였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과 반성, 상황의 해결책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손으로 글을 쓰면 뇌가 자극된다. 내가 한 소리가 아니고 뇌를 연구하는 가방 끈 긴 분들의 연구 결과이다. 그것은 또 다른 지면에서 다루겠다.) 질문을 가진 이는 답을 찾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말을 응용하자면, “질문을 적는 자는 답을 얻게 되리라”
의미는 다른 이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름표를 달아주기 나름이다. 이름표를 달아주기 위해 꼬리를 추적해야 하지 않을까? 그 추적장치(?)가 ‘노트 쓰기’인 셈이다. 하루에 무슨 일들이 반추하고, 그 일들에서 의미 느끼는 시간과 노력으로의 ‘노트 쓰기’ 말이다.
앞을 보고 자전거 페달을 저어 갈 때는 느끼지 못한다. 활자에 눈을 두고 책장을 넘길 때는 보지 못한다. 페달을 잠시 멈추거나 여백으로 시선을 옮겨야지만, 그래서 반추해야만 느낄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살아낸 당신의 하루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 아껴야 할 당신에게 시간과 의미를 부여할 가치, 충분하지 않은가? 노트를 펼치고 펜을 쥐고 하루와 당신에 대해 써보자. 그 기록들에서 의미를 찾고, 문제점이 있다면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단순한 일기가 아닌, 해결책과 개선점을 찾는 방법으로의 기록. 그래서 작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적극적인 하루 기록’. 그것이 일상과 직장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이라 믿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의 글로 마무리한다.
결국 우리가 삶에 의미를 더하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의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내 안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길뿐이다. 어차피 범상한 많은 이들의 변화는 점진적이다. 점진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만이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낸다. – 하루 5분 나를 성장시키는 메모 습관의 힘, 신정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