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
많은 훌라 시스터즈들의 훌라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어준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작가님의 이 말을 곱씹으며 읽었다.
(작가님의 의도를 내가 잘 이해했을까?)
심시선으로 부터 뻗어나온 가족들이 하와이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제사가 아니다.
시선이 살았던 하와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선을 기억하며
제사상에 올리고 싶은 물건 (또는 경험)을 준비하는 제사이다.
처음에는 이 제사 방식이 정말 좋아서 호기심이 생겼다. (본질 그자체)
결혼을 준비하면서 본질을 가리는 문화와 인식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차라
제사도 이제 바뀌어야한다 라는 불타는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작가님이 단순히 제사가 아니라
시대가 만든 산물들, 여러 시대를 거쳐온 여러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다양하게, 하지만 버겁지 않게 보여주셨다.
너무 좋았고 더 생각거리가 많아졌다.
인물들도 얼마나 다채롭고 매력적인 지..
매 챕터를 여는 시선의 글을 보며, 가족들이 기억하는 시선을 보며
시선에게 빠졌다가
결국 가족 한명한명의 서사에 다 빠져버렸다.
한 챕터씩 오래 읽다보니 시기별로 해당 인물이 마음에 팍팍 다가왔다.
너무 바쁘고 힘든 시기에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 2,30분이 해방처럼 느껴졌는데
현실의 힘듦을 잊으려고 무작정 책을 집었던 난정이 다가왔고
꿈은 크지만 실력은 없는 것 같을 때, 안주와 도전 속의 균형을 고민할 때
나와 비슷한 진로 고민을 하고 결국 바다의 거품을 가져온 우윤이 다가왔고
민희진 대표님의 기자회견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 때
애꿎은 경영지원팀 여직원들에게 던져진 염산으로 이전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화수가 다가왔다.
등장인물들이 한뼘씩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눈물흘렸다. (저도 심시선 가계도에 껴주시면 안될까요...)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이 책의 맨 뒤 김보라 영화감독님의 추천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시선처럼 쓰고, 읽고, 자신의 삶을 산 할머니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더라면
한국 사회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좋은 전망을 준다.
내 또래의 여성들은 생각은 깨어있으나 윗 세대로부터 보고 자란 것들이 있어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고도 열받는 지점이다.)
얼마 전 친할머니를 뵙고 왔는데,
여자가, 며느리가 잘해야한다고 말하던 할머니한테
"할머니 내 할머니 맞아 ? 남자가 잘해야지 여자가 잘하지" 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고 맞받아치고 왔지만
며칠 새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90대 할머니의 말을 무시하면 될 걸 왜 마음 한켠으로는 잘해야할 것 같은 부담 한 방울이 남아있을까, 우리 엄마는 이런 말을 몇년간 들었기 때문에 쉽게 본인 탓을 하는 걸까.
우리 할머니들이 시선 같았으면 엄마 세대와 우리 세대는 더 자유로웠을까.
나는 반항심만 가득한데 시선처럼 시대편향적이지 않고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