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34
1
지난주 커피 수업에서 반장님과 총무님이 수업 준비를 위해 일찍 강의실로 오셨다.
때마침 나는 시간이 많아서 일찍 왔던 터라 선생님과 그분들을 마주했다.
두 분이 물을 나르는 등의 수업 준비를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쫓아다녔다.
별달리 도운 것도 없다. 그냥 대화를 나누며 약간의 말상대를 해드렸달까.
선생님은 총무님과 반장님에게 로스팅한 원두커피를 한 봉지씩 드렸다. 아무래도 30분이나 먼저 와서 도우시니까 보답의 차원인 것 같았다.
속으로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었다.
총무님이 봉지 안의 커피를 만지며 말씀하셨다.
"어.. 원두네... 가는 기계 없는데.... 자기? 있어요?"
멀뚱히 있다가 대답했다.
"예, 저번 주에 장만은 해놨어요."
"나는 가는 기계가 없어서 안되겠어. 자기 가져! 도와줬잖아."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툭 던져주셨다.
"아... 아니.. 저는... 괜찮아요...."
공짜로 받는 게 극도로 부담스러워서 사양했으나 총무님은 그렇게 쿨하게 넘겨주시고 마는 것이었다.
진짜 도운 게 없는데...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어지는데....
2
어쩔 수 없었다. 수업 중에 총무님의 얼굴 사진을 촬영해두었다.
대머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분의 캐리커처를 급히 그렸다.
나름 신경 써서 보톡스를 맞힌 얼굴로 그렸다. 눈도 좀 키우고...
다음날 카톡으로 보내드렸는데 모르겠다, 말씀으로는 예쁘다고 하셨는데..
3
사두었던 핸드 밀로 총무님에게 받은 원두를 갈아봤다.
4
스르륵 손잡이를 돌리면 드르륵 갈리며 커피향이 올라오는 운치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스르륵?
그렇게 힘없이 돌려지지가 않았다. 힘을 빡 주고 파파박 돌려야 돌아갔고 금방 갈리는 것도 아니어서 힘이 이만저만 드는 것이 아니었다. 커피향이 올라왔다. 향을 느낄 새가 없었다. 파파박 돌리느라 몸에도 힘이 들어갔고 갈리는 소리가 드르륵? 천만에!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 카카칵!
커피 20그램 가는 게 오래 걸리고 어찌나 힘이 들던지 이제 악력 운동과 팔운동은 따로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5
천신만고(?) 끝에 드립을 해서 나온 커피는 썼다. 물에 희석하면 마실만했지만, 아직 풍부한 맛을 끌어내기엔 내 드립 솜씨가 마땅치 않았다.
6
그로부터 2번 더 드립을 해봤는데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어제의 경우, 더운물에 내려지는 커피향이 거실을 채웠고 어머니는 향이 좋다고 감탄하셨다.
결론적으로는 커피를 마신 것이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방식과 향과 맛과 함께 문화를 느끼는 것 같다.
커피는 문화적 음료 같다는 기분이다.
7
이번 주 수업이 기대된다.
더 나은 드립 솜씨를 위해 힘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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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실 때가 정말 좋다. 생각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음료 이상이다.
-터키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