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이야기 05

시즌5-024

by 배져니
20180102-만다라-19 사본.jpg




1


내가 클래식을 듣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이다.

애초에 클래식을 들은 이유는 교양과 정서 함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귀가 심심해서였다.

독서를 하거나 작업을 할 때 적막함이 싫어서 음악을 켜놓고 싶은데, 가요 같은 경우에는 귀에 가사가 쏙쏙 들어와서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나는 귀에 편안하면서도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음악이 필요했고 그 당시에도 지금도, 클래식이 그런 음악으로 적당했다. 가사 없고 자극적인 멜로디가 없어서 귀에 순하게 들려오니까.

지금은 연주곡을 주로 듣는데, 이유는 같다. 연주곡은 가사가 없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2


어쩌다 보니 "베토벤 교향곡 전곡 모음(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을 구해서 듣게 되었다.

"교향곡 5 in C minor op 67- 1. Allegro con brio"라는 곡을 듣기 시작할 때였다.

이름만으로는 도대체가 어떤 곡인지 상상이 안 되었는데 이게 빠바바밤~ 빠바바밤빰빰~하는 '운명 교향곡'이더라.

아는 곡 나오니까 신이 나서 입으로 따라 부르다가 하던 작업을 멈추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래도 그 곡이 지나니까 다시 모르는 곡들이 나와서 안정감 있게 작업을 했다. 그런데 한참 듣다가 다시 아는 곡이 나왔다. "환희의 송가"였다. 또 따라 불렀다. 작업 시간이 지연되었다.

베토벤은 너무 유명한 곡이 많아서 작업할 때 배경곡으로는 좋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베토벤은 탈락! (미안해요, 같은 배씨인데... 봐드려야 하는데....)





3


음악에 대해 많이 몰라서 특정한 곡을 좋아하는 취향이 없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음악, 저 음악을 골고루 들어보게 된다.

멜로디를 좋아한다기보다 그냥 음의 흐름과 박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때문에 너무 괴기스러운 느낌이 아니면 웬만한 음악을 다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작업할 때 들려오는 곡은 꼭 모르는 곡이어야 한다.

결국 요즘은 24시간 내내 재즈 피아노 연주곡만 들려주는 '그리스'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애청하고 있다.

이상한 습관, 벽, 성격을 어찌해야 하누.... .






4


오늘은 4일. 새해를 맞은 지 4일째, 역시 계획은 작심삼일일 뿐인가?

오늘 나는 늦잠을 잤고 이런저런 작업을 아직 끝내지 못했다.

이런 내가 한심해 보여서 말도 못하게 실망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스로에게 실망했더라도 유체이탈하여 다른 사람에게 빙의할 수는 없는 일, 그저 다시 계획을 짰다.

쓰러져도 일어서는 데에 삶의 묘미가 있다고, 나는 다시금 힘을 모아 일어설 채비를 했다. 풀 죽어있는 여린 나에게 고소한 커피 한 잔을 먹이며, 다독였다.

괜찮다고, 원래 작심삼일이 정상이라고, 넘어지지 않고 백여일을 계획대로 사는 사람은 독한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은 상종 못할 독종이라고, 그에 비해 져니 너는 인간미 있다고, 얼마나 친근한 사람 냄새가 나는지 모른다고........

갖다 붙일 수 있는 이유를 다 붙여서 겨우 내 상처받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에잇!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내일은 열심히 살아야지.

우선 지금은, 오늘 했어야 했던 일을 최대한 해봐야겠다.






----------------------------------------------------




음악은 야만인의 가슴을 쓰다듬고,

돌을 무르게 하며,

옹이진 나무를 휘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윌리엄 콩그리브



매거진의 이전글자잘한 이야기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