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걷다
경복궁 3번 출구를 나와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 길. 고등학교가 정동에 있어 경복궁과 인근 마을은 오래된 추억과 함께 하는 곳이다. 십수 년이 흘러 오랜만에 나선 이 길은 왠지 친구네 집을 찾아가는 것 마냥 즐겁다. 마을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서울 한복판에 이런 산동네가 있었나 싶다. 기우뚱기우뚱 몸이 흔들려 중심 잡기도 힘든데, 눈은 창문 너머 익숙한 집들과 친구와 고무줄놀이를 하던 추억이 생각나는 골목길을 따라가고 있다.
오늘 부암동 여행의 시작은 세검정에서 출발 백사실 계곡, 창의문을 거쳐 통인시장에서 마무리하는 코스다. 지금까지는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시작 석파정을 오르는 길에 미술관과 아기자기 예쁜 소품가게들을 돌아보고, 옛집을 수리해 주인장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밥집에서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나들이였다면 오늘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여행이고 싶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세검정을 마주 보고 서 있으니 지명이 주는 결연함이 있었다. 인조반정 때 이귀, 김유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결의하고 칼날을 세웠다고 하는 성공한 쿠데타의 상징물이다. 그래서인지 세검정이라는 정자보다는 이곳의 옛 이름이 백운동, 흰색의 바위와 구름이 머무르는 풍광이라는 이름이 더욱 정감이 갔다. 세검정 정자 아래 너른 바위가 차일암이라고 하니 이곳이 흰 바위가 유명한 건 틀림이 없다. 정자 아래로 흐르는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시작 종로, 서대문을 돌아 마포에서 한강으로 연결된다고 하니 서울 종로, 서대문, 마포에 사는 사람들은 홍제천에 기댄 추억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살았을 법하다.
특히 장마 때면 세검정 아래 물구경이 꽤 유명한 볼거리였다고 하니 물과 얽힌 홍제천 추억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791년 (정조 15년) 홍제천 물구경을 (다산 시문집)에 “이때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 물이 갑자기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내리치는 물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물은 정자의 초석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형세는 웅장하고 소리는 맹렬하여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모두들 오들오들 떠며 불안해했다. 내가 ‘어떻냐”라고 물으니 모두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하였다고 적은 것을 보면 여름이 되면 나도 세검정으로 달려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한양이었던 시절부터 서울로 살아가는 지금까지 이곳은 더운 여름을 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인가 보다. 천년 고도 서울에서 특히나 권문세도들이 사는 중심지였던 이곳은 지금도 옛 모습이 남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사는 골목을 지나 북악산 자락으로 들어가니 서울 한복판에 버들치와 도롱뇽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흰 바위가 많아 백악산이라고 불렸다는 북악산은 흰색의 화강암이 많은 곳이다.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느리게 흐르는 자연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듯 아름다운 백사실 계곡에 들어오니 조선시대 이곳은 지금과는 다른 역할의 공간이었을 건만 같다.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의 동천과 흰 바위라는 뜻을 합한 백석동천이 이곳에 있다.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라지지 않고, 백사실 계곡이라 해서 백사 이항복의 놀이터였다는 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한때 추사 김정희의 소유였다는 것뿐이다. 별서를 돌며 주춧돌의 높이와 개수를 세어보고 사랑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누각에 앉아 깊은 백사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를 들으며 권세의 허망함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세도가들의 놀이 공간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가 오가는 치열한 정치의 현장은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백사실 계곡을 걸으며 막힘 없이 흐르는 무한한 자연의 시간 앞에 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덩그러니 주춧돌만 남아 주인이 누구인지도 전해지는 이야기로 남은 인간의 초라함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