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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Sep 14. 2018

지옥철에 대처하는 나만의 자세

feat. 밥벌이의 지겨움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도 없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출퇴근을 위해 평일은 매일 지하철 9호선을 탄다. 그 시간 9호선을 타본 이들은 알겠지만, 일반 지하철과는 꽤 다르다. 4년이 넘도록 매일 타는 지옥철 아니 9호선인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매일이 새롭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는 심호흡을 하며 9호선을 맞이한다. 더는 들어가지 않을 듯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안에, 이미 탄 사람 꼭 그만큼의 사람이 더 들어간다. '아니, 어떻게 승강장의 이 많은 사람들이 저 기차에 다 타지?'라는 놀람도 무심하게, 9호선은 엄마의 마음으로 밥벌이를 하러 나온이들을 모두 품는다.


수년간 지옥행 급행열차 같은 9호선 급행열차를 타다 보니 나름대로 노하우? 도 생겼다. 먼저, 9호선을 처음 타는 신입사원은 승강장에서 사색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출근 시간은 늦었고, 이번 기차는 못 탈것만 같아 안절부절못한다. 그렇게 지하철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기차에 올라타려고 옆구리 터져버린 김밥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밥알처럼 안으로 몸을 들이 민다. 그러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좁아터져 죽겠는데, 또 들어오려는 9호선 신입생을 향해 불쾌함을 표정으로 전한다. '그만 들어와 짜샤.' 불쌍한 초보9호선러는 환영은커녕 사람들은 인상 쓰지, 기차 안은 정체불명의 땀 냄새, 입 냄새?로 가득하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나같은 전문? 9호선 출퇴근러들은 그런 신입생을 보면 안쓰러움과 동시에 '나도 저랬지'라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유를 부린다. 우선, 승강장을 들어서면서부터가 다르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승강장을 쭉 스캔하면서 최적의 장소로 포지셔닝 한다. 최적의 장소란 바로, 기차의 마지막 손님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위치 선정이다. 애써 급행열차에 몸을 쑤셔 넣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앞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타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내 앞사람이 기차 안의 사람을 밀며 들어가 공간을 만들면 나는 그 뒤에 마지막으로 문 닫고 탑승하는 거다. 몸을 밀며 힘을 쓰지 않아도 되고, 기차 안의 사람들로부터 불쾌한 표정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마당 쓸고 돈 줍는 일이다. (라고 했지만 쓰고 보니 눈물이 난다...)

어렵게 탔든, 노하우를 활용해 탔든 탑승한 9호선 급행열차 안은 더 가관이다. 대략 몇 분간은 가족보다, 연인보다 더 가까워진 지하철 메이트와 마주 보거나, 앞뒤로 서거나 하며 부비부비 스킨십을 한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팔을 꿈틀 대기도 어려운 좁아터진 공간 안에서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스마트폰으로 무언갈 보고 있다. 심지어, 앞 사람의 백팩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양손으로 게임까지 한다. (역시 모바일 강국?) 표정은 무념무상, 해탈의 경지인 듯 아무 생각이 없다. 때론 그런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안쓰럽고 슬프기까지 하다. 무얼 위해 우린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혹은 이런 고통의 장소와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일하는가.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말했듯,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일까. 밥벌이를 하러 가는 길 마저도 이리도 지난하고, 고달플까.

출퇴근 시간의 9호선 급행열차는 사실 밥벌이의 지겨움으로 가득 차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온 이들이, 무거운 기차 안으로 들어가려 꿈틀대고, 버거운 하루의 시작을 외면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번 열차는 꼭 타야 해라며 몸을 비비는 아저씨도, 수줍게 비좁은 공간으로 들어오려 애쓰는 아가씨도 사실 낭만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밥벌이의 신성함과 비굴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광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저 슬프다. 나도 그 광대 중 하나이니까.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밥벌이를 지겹도록 하는 우리들의 목표가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라는 말은 아이러니하지만, 위로가 된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안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사실 밥벌이가 목적은 아니다. 더 큰 꿈이 있고, 더 큰 가치가 있다. 비록 9호선 급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비굴하고 뻔뻔하게 몸을 들이밀지만, 그것은 뻔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함이다. 내 자식을 위함이고, 내 가족과 '나'를 위함이다. 밥벌이를 위해 스마트폰 꺼내며 꾸역꾸역 9호선 열차에 몸을 실지만 역설적으로 지겨운 밥벌이를 끝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지하철 9호선에는 밥벌이의 지겨움 보다는 비장함이 더 크다.

오늘도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길을 나선다. 비록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낭만과 자존심과 품위를 버리는 일개 직장인이지만 나 역시 끝내 밥벌이가 목표는 아니다. 달라지는 건 없지만, 끝내 밥벌이가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은 밥벌이의 지겨움과 비장함을 넘어 신성함으로 나를 이끈다. 정신승리여도 좋다. 어쨌든 밥벌이가 결국의 목표는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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