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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Nov 26. 2018

[주간에세이] 하마터면 잘 못 놀 뻔했다

주간BD, 11월 4주


애니어그램이라는 성격 유형 검사가 있다. 성격의 유형 구분을 통해 유형의 특성과 장단점을 분석해주는 것을 넘어, 성격의 근원을 분석해주는 성격분석 tool이다. 애니어그램은 인간의 성격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다른 성격유형검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두려움'이라는 전제다. 인간은 각자만의 무의식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어떤 사고와 행동이 나타나고 그것이 성향과 성격이 된다는 내용이다. 
내 기본유형이자, 이상주의자 라는 별명을 갖는 1번 유형의 두려움은 '불완전'과 '부도덕'이다. 즉, 1번 유형은 불완전과 부도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완전과 도덕 그리고 균형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꼼꼼하게 일 처리하며, 높은 도덕성을 추구한다는 장점을 갖는 반면, 심하면 결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기 절제와 검열이 심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애니어그램에는 기본유형 외에 유형마다 통합 방향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더 정신적으로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취해야 할 연결 유형을 의미한다. 1번 유형의 통합방향은 7번 유형으로, 7번 유형의 별명은 낙천주의자다. 즉, 1번 유형은 자기만의 기준과 완전함을 버리고 낙천주의자의 마음으로 즐기는 태도를 가질 때 좀 더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7번 유형의 두려움은 '고통'으로 7번 유형의 사람들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재밌어 보이는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며, 지금 이 순간 재밌는 것, 행복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반면, 1번 유형은 그런 즐거움 앞에서 주춤한다. 이것이 도덕적인 것인지, 내 삶과 오늘의 일상에 완전함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지, 나아가 균형을 맞추는 일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1번 유형은 7번 유형처럼 즐기거나 잘 놀 줄을 모른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1번 유형인 나는 낙천가인 7번 유형과는 반대 성향이다 보니 말 그대로 '잘 놀 줄' 몰랐다. 잘 논다는 것의 본질은 7번 유형의 특징처럼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데, 20대 초반까지 자의식이 강했던 나는 쾌락 앞에 죄책감을 느꼈고, 쾌감이라는 달콤함 앞에서 완전함과 균형의 씁쓸함을 찾았다. 그리고 그 씁쓸함이 몸에 더 좋은 것이라 여기며 고통을 즐겼다. 그것은 어떤 노력이라기 보다 불완전과 부도덕이라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1번 유형의 무의식적 발버둥이었다. 하지만 1번 유형에만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니 삶이 팍팍해졌고, 더 풍성하고 즐거운 인생을 위해 7번 유형의 장점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의식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잘 노는 7번처럼 살자', '잘 노는 인싸가 되어보자'.



잘 놀기 위해 첫 번째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면의 목소리 귀 기울였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있어 기본 전제는 무엇에 즐거워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 아닌, 내 즐거움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오롯이 행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무의식을 이겨내는 의식의 노력이었다. 
잘 놀기 위한 두 번째 스텝은 결단과 실행력이다. 좋아하는 걸 찾았다면 그것을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을 넘어 충동력?이 필요하다. 축구를 하고 싶으면 공을 갖고 운동장으로 나가 재미 없어질 때까지 하는 거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비행기 티켓을 지르는 거다.  
세 번째 단계는 놀기 위해 쓴 에너지와 시간과 돈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는 태도다. 7번 유형에게는 즐겁게 노는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나 같은 1번 유형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에게 죄책감은 생각보다 큰 동력이자 족쇄다. 

즐거움을 찾는 일과 충동력 그리고 죄책감 없는 태도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나는 이십여 년이 걸려서야 깨달았다. 하마터면 잘 못 놀 뻔했다. 하마터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체 노는 척할 뻔했다. 하마터면 실행하지도 못하고 상상과 꿈으로만 놀 뻔했다. 하마터면 놀고 나서도 찜찜하고, 불쾌하게 놀 뻔했다. 앞으로도 잘 놀기 위해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쾌감을 느끼는지 오감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응이 오는 것에 충동력으로 즉각 실행하며, 놀고 나자마자 다음 놀이를 찾는 뻔뻔함으로 놀자. 잘 노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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