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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Feb 09. 2019

[주간에세이] 정치외교학이란 무엇인가

주간BD, 2월 2주

*본 에세이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인 김영민 교수의 전공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쓰게된 글로 특정 학과 홍보와는 관계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정치외교학' 이란 무엇인가. 듣기만 해도 진부한 향내가 나고, 내 인생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치'와 '외교'라는 학문이라니. 마치 고전 철학과 낭만 문학 같은 현실감 떨어지는 배부른 학문 느낌이다. 철학과 문학이야 인문학으로 분류되어 낭만이라도 있지, '정치외교학'은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어 인간에 대한 탐구는커녕 정치놀음이나 하는 한량스런 학문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정치외교학 전공자(나 포함)들만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남들보다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 meokosanism(먹고사니즘)보다 realism, idealism 같은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 현상보다 본질을 좋아한다는 것. 좋게 말해 본질에 관심이 있다는 거지 현실에서는 밥벌이 못하는 사회과학 전공자들 중 2등이면 서러운 존재다. 입사 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경영학과 달리, 배운 내용들을 현실에서 쓸데가 별로 없다. 유일한 장점은 신문 읽기가 쉬워진다는 것. 그 외에는 사실상 없다. 철없던 학부 시절 UN 입사를 준비하던 동아리 선배의 꿈과 자신감이 멋져 보여 덩달아 전공 선택을 한 나 역시, 지금껏 밥벌이를 하면서 정치외교학 공부가 도움이 됐던 적은 딱히 없다.(교수님 쏘리)

대학에서 배우는 커리큘럼도 가관이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현실판인 '정당과 민주주의', 국내 정치도 관심 없는데 딴 나라 정치라니. 마치 한국말도 어눌한데 스페인어 배운다고 깝죽대는 듯한 '국제정치'. 도덕 시간 맹자의 측은지심이 배운 '사상'의 전부인데 '정치사상'은 웬 말. 그야말로 논어, 맹자, 중용을 읊던 성균관 유생이나 배울 것만 같은 고리타분한 학문이다.

이제 와 수줍은 고백을 하자면, 취업 준비에 매진하던 그 시절 나는 문과생들의 워너비. 정장 빼입고 다니던 경영학도가 그리 부러울 수 없었다. 국민연금 10원도 내 본적 없는 대딩들이 기업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마케팅 사례를 조사하며 보노보노마저도 멋져 보이는 ppt 장표를 만들어 잡스 형님 뺨치는 PT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그들이 세상 돌아가는 쳇바퀴에 러닝머신 뛰듯 잽싸게 적응할 때, 나는 유럽연합(EU)의 형성 역사와 홉스, 로크의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중국식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외웠다. 달달 외우고 이해했던 정치사와 이데올로기는 SSAT 앞에서 오늘의 운세마냥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가벼운 지식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현실감 없는 내 전공에 대한 냉소는 더욱 심해졌고,  백악관에 오바마가 있든 트럼프가 있든 노상관이라 여기고, 북학의 비핵화가 당장 내일 있을 미팅 보다 뭣이 더 중요할까 생각했다. 큰 여객선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면서 침몰했을 때도 그랬다. 한 방송사가 태블릿PC를 찾아내 국정 농단 세력을 취재하고, 건국 이레 최초로 대통령을 국민들이 끌어내리려 할 때도 부끄럽지만 내 삶과 거리가 먼, 아주 비참하고 슬픈 영화 같은 딴 나라 일이었다. 경복궁역에서 청운동, 효자동 길을 걸으며 '하야송'을 부르던 그때도 분노로 가슴 뜨거운 감정이라기보다 어린 시절 추석 명절 동네 형들과 하던 폭죽놀이를 가는듯한 설렘이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순간에 '나도 그 광장에 있었다', '나도 목청 따갑게 외쳤다' 말하기 위한 명분을 위한 주말 나들이의 설렘은 광화문 광장에서 들리는 낯익은 가냘픈 목소리로 무참히 깨졌다. 그 선배와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NGO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신입생 MT에서 그녀의 생생한 다짐은 어느덧 광장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외치는 진심의 외침과 울분이 되었다. 대형 화면에 비친 선배의 얼굴엔 십여 년 현장을 뛰다닌 흙먼지가 보였고 눈망울엔 진심이라는 땀 같은 물이 흘렀다.      

딱 그때부터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날 즈음부터, 내 목줄을 쥔 누군가의 앞에서 자본주의 미소와 박장대소를 장전하는 순간에도 내가 누구인지, 왜 돈을 벌고, 세금을 내는지. 내가 속한 사회와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내 일상과 직접적으로는 상관없을지라도 정치와 제도, 도덕과 정의에 대해 더 고민했다. 그것은 그날 무겁게 서 있던 선배 앞에서, 촐싹대며 가볍게 서 있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외학도로서의 자존심이자, 먹고사니즘에 치여사는 30대 아저씨로 변했지만 학창시절 이상만 바라보며 전공을 선택한 낭만적?이었던 20대의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간혹 대학 진학을 앞두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 중 어디서 들었는지 정외과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 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에게 1차적으로 웃음기 싹 빼고 눈을 쳐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당장 그 생각 그만둬'. '문송합니다를 넘어 정치외교학이라니...제 정신이야?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그 시간에 기술을 배워라'. 나를 꼰대라 불러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에게 이 순간 'stay'를 외치는 것보단 지금 내가 그 생각 끊어버리는 게 낫다는 심상이다. 그러다 그 친구 눈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태세를 전환하며 웃음으로 말한다. '공부 재밌어'. '신문 1면이 정치잖아. 세상은 결국 정치야. 널 응원해^^'.

그런 친구를 보면 기특하다. 다들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배 채우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효율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뜬구름 같은 사상과 이상에 관심을 갖고 한 번 사는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다는 게 놀랍고 기특하기만 하다. 무슨 밥벌이를 하더라도 그들이 정외학도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것은 월급통장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가 아닌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생각하는 넓은 시각이다.

월급 날에는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영화 '박사하탕' 주인공 '영호'의 20대는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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